'군대 보유'를 금지한 일본 헌법 제9조는 맥아더 사령부의 작품이다. 일본 우익은 이를 들어 '평화헌법'은 미국이 강요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전혀 사실이 아니다. 맥아더 사령부가 당시 일본 내각에서 '가장 반동적인 인물'로 찍었던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외무장관 같은 인물도 맥아더의 뜻을 수용했다. 총리 시데하라 기주로(幣原喜重郞)는 맥아더에게 먼저 전쟁을 포기하겠다고까지 했다.
그 이유는 제9조가 천황제 보존의 방패막이였기 때문이다. 1946년 초 천황제는 일본 안팎으로부터 강력한 위협을 받고 있었다. 내부의 위협은 천황제 폐지 주장이다. 당시 진보적 지식인인 다카노 이와사부로(高野岩三郞) 등이 주도한 '헌법연구회' 및 일본 공산당의 헌법 초안은 천황제의 완전 폐지를 담고 있었는데 일본 국민의 상당한 지지를 받고 있었다.
외부로부터의 위협은 일본의 전후 관리를 맡은 연합국 최고 정책 기관인 극동위원회(EFC)의 창설이다. EFC가 활동에 들어가면 헌법 개정에 관한 맥아더의 결정권은 EFC로 넘어갈 것이 확실했다. 또 EFC 창설 이후 미국'영국'소련'중국 등 4개국으로 구성된 대일이사회(ACJ)가 만들어질 예정이었는데 헌법 개정에 관한 맥아더의 지시는 4개국 중 한 나라만 거부권을 행사해도 무효가 된다. 이는 용이한 점령 통치를 위해 천황을 이용하려는 맥아더의 계산과 천황제 유지라는 일본 내각의 희망의 좌절을 뜻했다.
EFC 창설을 약 한 달 앞둔 1946년 2월 초 맥아더가 전쟁 포기를 포함한 '개헌 3원칙'을 참모들에게 하달하고 10일 안에 개헌안을 마무리하라는 '긴급' 명령을 내린 이유다. 맥아더 사령부의 개헌안에 보수주의자들은 처음에는 허옇게 질렸으나 이렇게 해야 천황을 보호할 수 있다는 배경 설명을 듣고 선선히 개헌안을 받아들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평화헌법은 일본 의회에서 일부 수정을 거쳐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됐다.
일본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압승함에 따라 아베 총리는 그토록 원하는 헌법 개정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가 이렇게 개정에 목을 매는 것은 평화헌법을 '패전국이 승전국에 바친 반성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제9조'가 어떤 과정을 거쳐 탄생했는지 모르는 무지의 소치다. 그런 점에서 일본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가 아베를 '생각 없는 인간'이라고 꾸짖은 것은 참으로 적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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