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만수무강하이소." 여든다섯 살인 김 씨 할아버지는 진료를 마치고 갈 때마다 이런 인사를 한다. 만수무강이라니…. 아직 그런 인사를 받을 나이는 아닌데. 아마 김 할아버지는 자기 희망사항을 인사로 대신해 주문을 거나 보다.
'세월이 가도 변하지 않는 3대 거짓말'이란 것이 있다. 즉 처녀가 '시집 안 갈래요', 장사하는 사람이 '손해 보며 판다', 그리고 노인이 '이제 그만 죽어야지'가 바로 그것이다. 아마도 시집가고 싶어요와 손해 보고는 절대 못 팔아!, 그리고 좀 더 살고 싶어의 반어법적 표현이겠지만, 세상이 변하다 보니 시집 안 가는 많은 처녀 총각들이 생겨나고, 경제가 어려워져서 진짜로 밑지고 파는 장사가 생기는 모양이다.
그러면 세상이 변했으니 요즘 노인들은 진짜로 죽고 싶을까? 진료를 하다 보면 "살 만큼 살았으니 이제는 그만 죽어야지"라고 말하는 거짓말쟁이(?)들을 자주 만난다. 물론 그분들 중에는 삶이 고달프고 힘들어서 진짜로 삶에 미련이 없는 환자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생은 누구에게나 한 번밖에 주어지지 않는 것. 소중한 것이기에 삶에 대한 미련은 누구에게나 있게 마련이다. 다만 나이 들어 삶에 집착을 보이면 노욕(老慾)이라고 흉볼까 봐 표현을 못 할 뿐. 아직 젊은 사람들은 생이나 죽음에 대해서 생각할 겨를이 없겠지만, 나이가 들수록 삶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이는 솔직한 환자들을 가끔 만난다.
일흔다섯 살 박모 할머니가 그런 사람 중 한 명이다. 당뇨병에 콩팥까지 병들기는 하였지만 아직은 죽음을 생각할 만큼 나쁘진 않은데 병에 대한 두려움이 많아서 오실 때마다 입버릇처럼 말씀하신다. "선생님요~, 나 팔십까지만 살도록 해주이소. 손자 장가가는 것까지만 보고 가고 싶어요." 일흔여덟 살 정모 할머니는 심장이 워낙 좋지 않아 보호자들에게 미리 말해놓았다. "언제 갑자기 돌아가실지 모르니 마음을 단단히 먹고 계셔야 할 겁니다." 그런데 정작 할머니는 의사를 보면 이런 솔직한 속내를 드러낸다. "선생님요~, 나 쫌만 더 살게 해주이소. 내가 젊을 때 하도 못 먹고 고생을 많이 하다가 이제는 이렇게 좋은 세상 만났는데 죽을라카이 너무 억울해서 못 죽겠어요. 나 쫌만 더 살게 해주이소."
"할매요. 걱정 마이소. 할매 나이 갖고는 요즘 어데 가서 명함도 못 내밀어요. 요즘 할매들은 다들 아흔까지는 거뜬하게 사시니까 걱정 마시고 재미나게 잘 사이소." 이렇게 나도 어느덧 거짓말쟁이가 되어 병실을 나오며 '피노키오처럼 코가 길어졌나?' 하며 슬쩍 만져보는데 코는 그대로다. 아마도 착한 거짓말로는 코가 커지지 않는 모양이다.
김성호 대구파티마병원 신장내과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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