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에는 누구 집에서 잘까
조선 500년의 역사에서 가장 비참했던 현장을 꼽으라 하면 아마 단종의 폐위와 유폐, 그리고 사약으로 인한 죽음일 것이다.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비운에 죽어갔거나 인생의 허망을 느끼고 은둔 생활을 했다. 사육신과 생육신이 그 사람들이다. 그들은 모두 두 임금을 섬기지 않았다. 여기에서는 사육신의 한 사람인 저자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마지막 순간에 인생의 허망함을 느끼면서 남겼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북소리 목숨 재촉하고 석양 해는 기우는데
저승길엔 쉬어 갈 주막집도 없다 하니
오늘 밤 누구 집에서 하루 저녁을 묵을거나.
擊鼓催人命 夕陽日欲斜
격고최인명 석양일욕사
黃天無客店 今夜宿誰家
황천무객점 금야숙수가
'오늘 밤에는 누구 집에서 잘까'로 제목을 붙여본 오언절구다. 작가 매죽헌(梅竹軒) 성삼문(成三問)은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죽은 사육신의 한 사람으로 조선의 대표적 절신(節臣)이다. 요동에 귀양 와 있던 명나라 한림학사 황찬(黃瓚)에게 13차례나 왕래하며 음운(音韻)을 배워 훈민정음 창제에 지대한 공헌을 남겼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북을 쳐서 사람의 목숨을 재촉하니/ 붉게 물든 석양엔 해가 기울어 가는구나/ 저승에는 주막도 없다는데/ 오늘 저녁엔 누구 집에서 묵어야 할까'라는 시상이다.
조선 5대 임금 문종이 승하하자 조정은 들끓기 시작했다. 다음 보위(寶位)를 이을 세자가 겨우 12세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단종은 치마폭에 싸였고 신하들 말에 우유부단했다. 영월 적소에 위리안치되자 온 나라는 다시 우왕좌왕했으니 사육신과 생육신이 사생결단으로 막고자 했다. 성삼문은 불사이군(不事二君)이 아닌 죽음을 선택하며 인생무상을 읊은 시 한 편을 마지막으로 남긴다.
기구(起句)에서 북을 친다는 것은 하늘의 부름을 받는다는 뜻이지만 사형이 임박했음을 음영했고, 승구(承句)에서 석양에 해가 기운다는 것은 그래서 목숨이 다해가고 있다는 사실적인 내용으로 표현했다. 전구(轉句)와 결구(結句)에서는 시적 자아의 기막힌 심회를 또 한 번 만나게 된다.
화자는 저승에서는 주막이 없다는데 이 목숨 끊어지면 누구의 집에서 편히 쉴 것인가라고 한탄한다. 이승에서의 편했던 잠자리와 저승에서 편할 것으로 예상한 잠자리를 동격으로 생각하게 된다.
성삼문=1418년(태종 18년) 무관 성승(成勝)의 장남으로 충청도 홍주 노은동(현재 충남 홍성군 홍북면 노은리) 외가에서 태어났다. 출생 시 그의 모친이 꿈에서 '낳았느냐?'라는 질문을 세 번 받았다고 해서 이름을 삼문(三問)이라고 지었다는 설화가 있다. 호를 매죽헌(梅竹軒)이라 한 것은 매화'대나무와 같은 강직한 군자의 기질을 흠모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1435년(세종 17년) 생원(生員)시에 합격했고, 1438년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했다. 사간원 우사간, 집현전 부제학, 예조 참의, 동부승지, 우'좌부승지 등을 역임했으며 왕명으로 신숙주와 함께 '예기대문언두'(禮記大文諺讀)를 편찬하는 등 세종의 총애를 받았다.
1455년 세조가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르자, 이듬해 단종의 복위를 계획했지만 모의에 가담했던 김질의 밀고로 체포돼 친국(親鞫)을 받고 처형됐다. 1691년(숙종 17년)에 사육신의 관직이 복구되고 민절(愍節)이라는 사액을 내려 노량진에 민절서원을 세워 신위를 모시게 했다. 1758년(영조 34년)에는 이조판서가 추증되었다. 문집에 '성근보집'(成謹甫集)이 있다. 시호는 충문(忠文).
장희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시조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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