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 쫓아낸 태·권·도 기합!
탄자니아는 아프리카의 중동부, 적도 바로 아래에 자리 잡고 있다. 한반도 4배 넓이에 인구는 4천만 명이 넘는다. 세계적인 자연보호구역인 세렝게티와 마사이 부족, 아프리카 최고봉인 킬리만자로산으로 유명하다.
탄자니아 사람들은 늘 '하쿠나 마타나'를 외친다. '문제는 있지만 괜찮아'라는 뜻의 스와힐리어다. 이는 긍정적이고 유순한 그들의 성품을 만들었지만 모든 일이 '얼렁뚱땅' 진행돼 사회 전반의 발전을 가로막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강한 동기부여와 근면, 협동이 중요한 새마을운동의 보급이 쉽지 않은 이유다. 현재 탄자니아에는 4개 마을에 22명의 봉사단원이 파견돼 있다. 키보콰 마을이 있는 잔지바르 섬은 아프리카 동부의 최고 휴양지다. 도심인 스톤타운은 유럽의 옛 도시를 옮겨놓은 것처럼 아기자기하고 다채롭다. 하지만 도심을 벗어나면 집 앞에 앉아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을 숱하게 만날 수 있다. 할 일이 없고, 할 수 있는 일도 없는 그들의 서글픈 일상이다.
스톤타운에서 차량으로 1시간 거리인 키보콰 마을에는 600여 가구, 3천여 명이 산다. 주민 중 95%가 무슬림이고 월 평균 소득이 30~50달러에 불과하다. 대부분 벼농사를 짓지만 농업 기술이 부족해 수확량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곳에서 새마을봉사단원들은 다양한 교육을 통한 주민 역량 강화와 벼농사 등 소득 증대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전통방식으로 사는 사람들
키보콰 마을 안을 둘러봤다. 12개 부락 중 키앰베니와 킬리마니 부락이다. 흙길을 따라 들어선 부락들의 경계는 일정치 않다. 마을 안은 바나나 나무와 망고, 야자수가 빼곡했다. 한 주민이 보기에도 아찔한 20m 높이의 야자수 나무에 맨손으로 올라가 코코넛을 땄다. 이곳 주민들은 손님이 찾아오면 환영의 의미로 코코넛 열매를 따서 잘라준다. 정글 칼로 단단한 코코넛 열매를 툭툭 잘라 내밀더니 카메라를 피해 고개를 숙이며 수줍어했다.
한 마을 안에는 흙으로 벽을 지은 집들이 군데군데 서 있었다. 전통 가옥은 나무로 뼈대를 세운 뒤 흙을 채우고 야자잎으로 지붕을 덮은 방식이다. 집은 벽과 지붕이 있을 뿐 흙바닥에서 그대로 생활한다. 허리를 잔뜩 숙이고 들어간 집안에는 큰 돌 서너 개로 만든 화덕이 있었다. 부엌과 방이 구분돼 있지 않고 배수도 제대로 되지 않아 질퍽했다. 그나마 형편이 나은 주민들은 흙을 구워 만든 벽돌로 집을 짓는다. 하지만 돈이 생길 때마다 벽돌을 하나 둘 구입해서 짓기 때문에 집 한 채를 짓는 데 10년이 걸리기도 한다. 마을 안에 있는 이슬람 서당에는 날카로운 돌 위에 아이들이 그대로 앉아 수업을 듣고 있었다. 새마을지도자 중 한 명인 유스프(28) 씨의 집을 방문했다. 그와 아내, 다섯 아이가 함께 사는 집이다. 부엌과 침실에만 지붕이 있고 담만 두른 집 안에서 아이들을 씻기고 닭도 함께 키운다. 굴뚝이 없어 화덕에서 나온 연기는 그대로 집안에서 맴돌았다. 낯선 동양인을 구경하러 온 아이들은 가까이 다가가면 까르륵 달아났다가 돌아오길 반복했다.
◆새마을회관이 바꾼 변화들
키보콰 마을에서는 새마을회관 건립이 가장 두드러진다. 새마을회관은 마을 사람들의 모임 장소이자 교육장, 도서관, 일터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된다. 그 덕분에 유아 교육과 영어, 태권도 강좌가 가능해졌고, 영농 교육도 활기를 띠게 됐다. 'ㅁ'자 형태의 마을회관 중심에는 정원을 조성했고, 교실과 회의실, 창고, 시청각실, 사무실 등을 배치했다. 지붕에는 집수관을 설치해 빗물을 모아 쓸 수 있도록 했다.
교실 한 곳에서 어린이들의 미술 수업이 한창이었다. 서너 살배기 아이 60여 명이 왁자지껄 떠들며 크레파스로 장난을 쳤다. 칠판에는 점이 찍힌 종이에 집 모양으로 선을 그리고 색을 칠했다. 이혜령 봉사단원은 "아이들은 연필을 잡는 일이 처음일 정도이고 그림 자체가 낯설다"며 "기존 수업은 종이와 연필이 부족해 말로만 수업을 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보고 읽을 줄은 알지만 쓸 줄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영어 교실에서는 20대 청년들이 수동태와 능동태에 대해 배우고 있었다. 학생들은 교사의 설명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칠판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탄자니아는 중학교부터 영어로 수업을 하지만 실제 영어를 잘하는 이는 많지 않다. 생업 때문에 공부할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부족하고 교육 시스템도 취약하기 때문이다. 은퇴한 영어 교사를 초빙해 강의를 진행 중이지만 제대로 된 스와힐리어 교재가 없어 어려움이 크다. 오스만 미카미(25) 씨는 "공부를 하고 싶어도 교재가 모두 영어라서 쉽지 않다"며 "영어를 배워 체계적으로 오토바이 수리 기술을 익히고 싶다"고 말했다.
이곳에서는 태권도 교실과 재봉 교실도 마련돼 주민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재봉 교실에서는 재단사가 선을 그리고 맞춰 원단을 잘라주면 주민들이 재봉을 해 옷을 완성한다. 이들은 셔츠와 스커트 등을 만들어 마을 구판장인 두카에서 5천~6천Tsh에 판매한다.
◆농업 기술 교육이 생산량 증대로
새마을회관 옆에는 야자잎으로 지붕을 덮은 육묘장과 시범 농장이 펼쳐져 있었다. 이곳에서 재배하는 벼는 인접한 논과 크기가 두 배 이상 차이가 난다. 논 옆에 쌓은 풀더미 옆에서 동네 아낙네들은 정글 칼로 열심히 풀을 썰고 있었다. 톱밥과 지천에 널려 있는 풀을 섞어 퇴비를 만들고 있는 것. 씨를 뿌린 뒤 방치하는데 그쳤던 이곳 주민들에게는 새로운 시도다.
탄자니아는 일조량이 풍부하고 평균기온이 높아 작물의 생장 속도가 빠르다. 하지만 우기와 건기가 되풀이되기 때문에 연중 농사가 잘되는 것은 아니고 파종 시기를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시범 농장에서는 우기가 오기 전에 육묘를 한 뒤 미리 55t 규모의 집수정에 모아둔 물을 활용해 모내기를 한다. 그 덕분에 기존 벼보다 45일간이나 더 자란다. 생장 기간이 길어지면서 생산량도 크게 높아진다. 심용구 봉사단 팀장은 "3월 1일 볍씨를 파종하고 한 달 뒤 이앙을 할 경우 생산량은 1천㎡당 460㎏에 이르지만 우기가 오고 난 이후에 파종을 하고 모내기를 하면 쌀 생산량이 223㎏ 수준으로 줄어든다"며 "기술을 좀 더 전수해주고 싶은데 시간이 부족한 형편"이라고 말했다.
시범 농장은 마을 주민들의 인식을 바꿨다. 제시간에 나와 일을 하는 습관, 마을 공동의 이익을 위해 함께 일해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준 것. 또 농업 소득을 개인이 가져가는 대신 50%는 종자 구입비용 등에 재투자하고 절반은 새마을운동 공동자금으로 사용해 마을 주민들 스스로 계속할 수 있는 동력으로 사용할 방침이다. 심 팀장은 "농장 인부를 선발하고 임금을 정하는 데도 5, 6차례 이상 회의를 거쳐야 했다"며 "봉사단에게 가장 필요한 건 '인내'였다"고 했다. 탄자니아 잔지바르에서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사진'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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