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세테리스 파리부스

입력 2013-07-10 11:01:49

'세테리스 파리부스'(Ceteris paribus). '모든 조건이 같다면'이란 뜻의 라틴어 문장이다. 영국의 경제학자로 케인스의 스승인 앨프리드 마셜이 미시경제 분석을 위해 도입한 개념이다. 경제에 영향을 주는 모든 변수를 전부 고려하면 경제 현상의 파악 자체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한 가지 변수를 검토하는 동안 다른 변수들은 '울타리'에 가둬둔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경제학자의 머릿속 가상현실에서 행해지는 '사고 실험'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개념 장치의 장점은 명징하고 일관된 경제 분석을 가능케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쇠고기의 가격에만 초점을 맞춰 수요 변화를 분석하면 '쇠고기의 가격이 상승하면 쇠고기 수요는 줄어든다'는 명확한 법칙이 얻어진다. 하지만 대체재인 돼지고기 가격이 내려도 쇠고기 수요는 줄 수 있다. 소득이 감소하거나 쇠고기가 건강에 나쁘다는 판정이 날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현실은 이 모든 변수들이 뒤엉켜 있는 복잡계다. 결국 '모든 조건이 같다면'은 경제학에서는 유용할지 몰라도 현실에서 성립할 수 없는 가정이라는 얘기다. 경제학이 현실에서 자주 무능을 드러내는 이유다. 더 나쁜 것은 이것이 인간의 주체적 노력에 의한 조건의 변화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한국의 경제개발이다. 1960년대 초 한국은 자원도 인력도 산업 시설도 없었던 세계 최빈국이었다. 이런 조건에서 제조업 육성을 통한 경제개발은 난센스였다. 그러나 한국은 도전했고 성공했다. 모든 조건은 결코 영원히 같을 수 없으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리고 인간의 노력과 지혜가 보태짐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음을 증명한 것이다.

MB정부가 남부권 신공항을 무산시킨 이유는 경제성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경제성은 불변하는 그 무엇이 아니다. 낮은 경제성은 노력으로 얼마든지 높일 수 있다. 건설 계획 입안 당시 '경제성 제로'라는 비판을 받았던 경부고속도로는 이를 웅변하는 실례가 아닌가. 박근혜정부는 과연 이런 비현실적 가정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박 대통령의 지방 공약 이행 계획에서 '남부권 신공항'이 제외된 것을 보면 그렇지 않다는 걱정이 든다. 박 대통령의 부친은 '세테리스 파리부스'를 간단히 무시했다. 이런 아버지의 용기와 혜안을 그 딸이 본받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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