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바위 오를땐 승용차보다 버스가 편해
경산에는 '대구의 위성도시' '베드타운'이라는 말이 따라다닌다. 그러나 경산 토박이들은 '베드타운'이라는 말을 마뜩찮게 여긴다. 대구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자립할 수 있다는 자존심 때문이다. 원효대사와 설총, 일연 스님을 배출한 삼성현의 고장이고, 깨끗한 자연경관과 교육'문화'농업'산업이 잘 어우러진 점도 자랑으로 내세운다. 그만큼 경산에는 한 번쯤 둘러볼 만한 장소가 즐비하다. 영천에서 경산으로 넘어가는 길은 꽤 수월한 편이다. 영천 시내에서 55번이나 555번, 55-1번, 555-1번 등을 타면 하양읍까지 바로 올 수 있다. 하지만 이 노선 정보는 영천시청 홈페이지에서만 검색이 가능하고 포털사이트에서는 전혀 안내가 되지 않는다.
◆소망을 담아 오르는 갓바위길
오전 9시 35분 영천공용버스터미널 건너편에서 555번을 탔다. 25분 정도 졸고 나니 하양읍사무소다. 갓바위로 가려면 여기서 803번으로 갈아타야 한다. 803번은 30분마다 다니는데 하양읍에는 매시 5분과 35분에 도착하고 갓바위까지는 30분이 걸린다. 갓바위에 오르기에는 승용차보다 시내버스가 더 편리하다. 승용차를 타면 선본사 주차장까지만 갈 수 있지만 버스를 타면 선본사 일주문까지 올라갈 수 있다. 돌계단으로 이어진 길은 구불구불 끝도 없이 오르막이 이어진다. 암자와 굴마다 사람들은 향을 피우고 초를 켠다. "우리 애는 수학 성적이 안 나와서 고민이에요." "누구 집 애는 이번에 ○○대에 지원한대요." 자녀들의 성적을 고민하는 엄마들의 대화와 깊이 숙인 허리에서 어머니들의 간절한 염원이 느껴진다. 대웅전에서 한 계단을 더 오르면 갓바위 부처를 만난다. 수십여 명이 천막 아래에서 정성스레 절을 거듭하며 수십여 개의 초를 밝혔다. 갓바위에서 유리광전을 지나 약사암 쪽으로 산길과 돌계단길이 드문드문 이어진다. 약병을 들고 있는 약사여래불에서 선본사 쪽 이정표를 따라가면 고즈넉한 오솔길이 이어진다. 나무데크로 된 계단을 300m가량 내려가면 선본사 주차장이다. 갓바위로 오르는 길 오른쪽으로 선본사가 있다. 선본사 앞마당에서 멀리 관봉과 3층 석탑이 보인다.
갓바위가 알려지기 시작한 건 1960년대 이후다. 당시만 해도 갓바위로 오르는 길이 험해 다녀오려면 한나절은 족히 걸렸다. 최정수(58) 대한리 이장은 "갓바위로 오르는 길목 곳곳에는 토굴마다 무속인들이 만든 법당이 넘쳐났다"며 "가뭄이 오면 무당 때문에 부정 타서 그렇다며 마을 사람들이 올라가 법당을 모두 철거하고 쫓아냈다"고 했다. "배고픈 시절에는 갓바위 덕분에 입에 풀칠을 했어요. 지게로 갓바위에 쌀도 올려주고 땔감도 져다 주며 돈을 받았으니까요."
◆삽살개, 달리다
오후 1시 30분 버스를 타고 10여 분을 달리면 삽사리테마파크가 나온다. 이곳에는 훈련사와 직원 등 20명과 천연기념물 368호 삽살개 530여 마리가 함께 생활하고 있다. 삽살개 보존견사로 들어가자 삽살개들이 둥근 창으로 내다보며 일제히 짖어댔다. 큰 덩치들이 컹컹 짖어대다가 막상 견사의 문을 여니 잠잠해진다. "아이들이 와서 목줄을 잡아도 반항하지 않을 정도로 순해요. 절대 물지도 않고요." 삽살개의 운동신경은 평균 수준이지만 집중력이 뛰어나다. 시각보다는 코나 귀 등 다른 감각기관이 발달했기 때문. 삽살개가 흰개미 탐지견으로 훈련을 받는 이유다. 사람에게 친밀감을 느끼기 때문에 잘 보살피면 금방 정을 붙이지만 첫 주인을 잊지 못하는 습성도 있다.
삽살개들은 매일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 배변하는 훈련을 한다. 오전과 오후에 한 차례씩 간단한 훈련도 거친다. 이곳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삽살개는 열세 살 된 쇠돌이다. 사람 나이로 치면 팔순에 가까운 노견이다. 권기진(41) 부소장과 함께 청룡(4)이와 복길(8)이가 공연 시범을 보였다. 사다리꼴의 좁은 판자 위를 자유자재로 걷고, 링을 거침없이 뛰어넘는다.
이곳에서는 삽살개를 분양도 한다. 보통 2, 3살 성견을 분양하는데 신청서를 작성하고 간단한 인터뷰를 거쳐야 한다. 기부금 형식으로 30만원을 내면 되지만 심사가 까다로운 편이다. 입양인의 연령대와 주거 형태, 삽살개의 생활공간, 반려견을 키워본 경험 등을 꼼꼼하게 적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건 '양육 마인드'다. 상업적 목적을 배제하기 위해 양육을 하다가 포기한 경험이 있는지 자세히 살핀다. 삽살개는 보통 한 달 정도면 새 주인에게 적응하지만 길게는 2개월이 걸리기도 한다. 요즘은 매달 5마리 정도가 일반에 분양된다. 연령대별로 적정 마릿수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강아지는 분양하지 않는다. 8월부터는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3시간 동안 예약 없이 일반에게도 개방된다.
◆박사리의 슬픈 상처
삽사리테마파크 입구에서 5분 정도 걸어가면 위령비가 있다. 무장 공비들에게 희생된 박사리 마을 사람들의 넋을 위로하는 조형물이다. 1949년 11월 29일 오후 8시. 평화로운 마을에 장총과 일본도, 죽창, 몽둥이를 손에 든 빨치산들이 들이닥쳤다. 빨치산들은 각단(한동네 안에서 몇 집씩 따로 모여 있는 구역)마다 시국 강연이 있다며 사람들을 불러낸 뒤 총으로 쏘거나 죽창으로 찌르고 칼로 베며 무참하게 살해했다. 한 사람씩 정미소로 불러 가차없이 목을 치기도 했다. 내리치는 칼을 손으로 막다가 손목이 잘리기도 했고, 목뼈가 구부러진 채 살아남기도 했다. 이날 하루 저녁에 목숨을 잃은 주민만 38명, 크게 다친 이도 28명이나 됐다. 마을에 불을 질러 가옥 105채가 모두 탔다.
신봉환 와촌면장도 당시 사건으로 큰아버지와 6촌 아저씨를 잃었다. 신 면장은 "무고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이유는 어이없는 '오해' 때문"이라고 했다. 한 주민이 팔공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가 빨치산의 아지트를 발견하며 납치됐고, 살고 있는 동네를 '박사리'라고 거짓말을 했다는 것. 이 주민은 목숨을 부지하고 돌아와 신고를 했고, 대대적인 공비토벌작전이 벌어져 빨치산 수십여 명이 사살됐다. 살아남은 빨치산들은 청도 운문산 빨치산과 합세하고 인근 마을 주민까지 부역자로 동원해 보복에 나섰다. 엉뚱한 마을인 박사리로 들어와 만행을 저지른 꼴이었다. 이후 부역에 동원됐던 마을 주민들과 박사리 주민들은 원수가 됐다. 피해자와 타의에 의한 가해자. 아픈 역사가 낳은 서글픈 반목인 셈이다.
◆전국 최대 규모의 묘목 생산지
하양읍에서 809번으로 갈아탔다. 금호강을 가로지르는 잠수교를 지나면 도로 양쪽으로 농원이 밀집해 있다. 전국 묘목 생산량의 70%를 차지하는 하양읍 환상리와 대조리 경산종묘산업특구다. 이곳에서는 450㏊에서 연간 2천만~3천만 주의 묘목이 생산된다. 2008년부터 경산종묘클러스터사업이 추진되면서 종묘기술개발센터와 종묘유통센터도 건립됐다.
금호강변을 따라 들어선 이 지역은 사실 해마다 홍수가 나면 범람하던 지역이었다. 덕분에 땅이 기름진데다 물빠짐이 좋은 모래흙이어서 과수 농사에 적합했다. 주로 뽕나무를 기르던 이곳은 1912년 일본인 고바야시가 들어와 묘목을 생산하며 종묘 산업이 시작됐다. 당시 지었던 고바야시의 집은 아직도 대조리에 그대로 남아있다.
이후 사과 묘목이 들어오면서 경산의 묘목 시장은 다양화되기 시작했다. 사과나무를 대구에 처음 심은 건 동산의료원 초대 원장인 선교사 존슨이지만 본격적인 과수 산업은 이곳에서 시작됐다. 동촌을 시작으로 금호강을 따라 영천까지 사과 단지가 들어서면서 사과 묘목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 자동차 완성차 공장 옆에 부품 공장이 들어서는 것과 같은 이치다. 1920년 일본인 시누하라 사키마토가 이 일대에 사과재배단지와 묘목 단지를 조성해 재배 기술을 퍼뜨렸다. 시누하라 사키마토의 집도 여전히 이곳에 보존돼 있지만 빈집으로 방치된 상태다. 사과 재배단지는 기후 변화로 사라졌지만 묘목 생산은 여전히 활발하다. 연중 기후가 따뜻하고 토질이 모래흙이기 때문이다. 2대째 묘목을 생산하고 있는 키낮은사과묘목영농조합법인 배준우(47) 대표는 "묘목은 열매를 맺을 때까지 제대로 키웠는지 알기 힘들다"며 "반드시 좋은 열매를 맺는다는 신용이 중요한 농업"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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