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나는 1인가구… 그들이 사는 법
'인간이별(세상) 만사 중에 독수공방에 상사난(相思難)이란다'(경기도 민요 '매화타령')
옛날에는 혼자 사는 게 제일 힘든 일이었나 보다. 그러나 사회가 복잡하고 분화되면서 대한민국은 나홀로 사는 사람들로 넘처난다. 대한민국의 4가구 중 1가구는 혼자 산다. '1인 가구'는 이미 전체 가구 중 25%를 돌파했고 2035년이면 34%에 이를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가족의 규모는 작아지고 결혼은 늦어지며 수명은 늘어나기 때문이다.
1인 가구는 이미 예외가 아니라 표준이 되고 있다. '혼자살기'가 외로울 것이라는 전통적인 관념을 넘어 입체적이고도 풍요로운 삶을 제시하고 있다.
대학교육과 취업 등을 위해 본격적인 독립을 하는 20대, '자유로운 삶(?)'을 위해 기꺼이 결혼을 포기하는 독신 직장인들, 결혼이 행복이나 안정을 보장한다는 말을 더 이상 믿지 않는 이혼 남녀들, 자녀와 함께 살기보다 혼자 사는 편이 낫다는 노인들…. 이들은 외친다.
"어차피 혼자 사는 인생, 멋지게 살거야!"
◆'홀로'를 선택한 사람들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장양미(가명'43'여) 씨는 대구 중구 경북대병원 인근의 한 오피스텔에 혼자 산다. 4층짜리 건물에 원룸 30여 개가 모여 있는 곳이다. 그가 쓰는 방은 20㎡ 정도의 작은 규모. 그래도 없는 게 없다. 침대와 책상, 드럼세탁기, 냉장고가 공간에 꼭 맞게 자리하고 있다. 장 씨는 "심심하거나 여유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는 1층에 있는 헬스룸에 간다"고 했다. 목욕탕과 헬스룸이 갖춰진 그곳을 장 씨는 '사랑방'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혼자 살면 종종 외롭고 쓸쓸해지는 데 헬스룸에서 운동도 할 수 있고 친구도 만들 수 있어 꽤 유용하다. 다른 입주자들과 자연스레 마주치며 일상을 나누기도 한다"고 했다.
역시 싱글족인 이정훈(가명'42) 씨는 식사 때면 주로 동성로에 있는 '1인 식당'을 이용한다. 독립생활을 한 지 10여 년째. 익숙해질 때도 됐지만 가끔 한 번씩은 '오늘은 정말 혼자 밥 먹기 싫다'는 생각에 몸서리칠 때도 있다. 그럴 때면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과 함께 '밥계'를 만들어 식사를 한다.
연휴 때면 여행사의 당일치기 관광상품을 이용해 '나홀로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지난해에는 미혼남녀를 대상으로 하는 '로맨틱 여행'에 참가하기도 했다. 이 씨는 대학생 때부터 연애를 했지만 결혼은 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결혼을 후회하는 기혼자보다 행복하게 산다"고 자부했다.
이 씨의 직장 동료인 박태현(가명'48) 씨는 3년 전 결혼을 포기했다. 모형자동차 조립과 운동만 할 수 있다면 굳이 가족은 필요없다는 생각이다. 솔직히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일상이 바쁘기 때문에 외로움을 느낄 겨를도 없단다. "언젠가부터 여성과 데이트를 하면 그 여성은 결혼해서 살 집은 있느냐고 노골적으로 물어요. 자기도 돈을 모아놓지 않았으면서 내게 그런 것을 요구하는 게 당황스러워요. 이제는 혼자 사는 게 편합니다. 노후 대책은 아직 없어도 지금처럼만 살면 나이 들어도 재미있게 잘 살 것 같아요."
◆1인 가구를 잡아라
1인 가구를 겨냥한 맞춤상품과 서비스들이 앞다퉈 출시되고 있다. 대형마트나 편의점에서도 소형 포장과 1인 가구를 위한 맞춤 제품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가구나 가전제품도 예전보다 한층 세심하게 1인 가구를 배려하고 있다. 식품업계에서는 소포장과 편의성'고품질 위주의 전략으로 1인 소비층을 겨냥한 마케팅이 쏟아지고 있다. 맞춤 서비스도 등장했다. 보안과 안전을 결합한 가정용 특화 방범 서비스는 물론 세탁'청소'쇼핑 대행 등 생활지원 서비스도 등장했다.
혼자 식사할 수 있는 1인 식당도 생겼다. 대구의 경우 동성로를 중심으로 1인 손님을 위한 식당들이 우후죽순 문을 열고 있다. 1인용 테이블을 마련하고 '나홀로 손님'을 받는 전문식당이 최근 1, 2년 사이 10여 곳 정도 생겼다. 1인용 테이블은 카페, 레스토랑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다. 술집 등 다른 서비스 업종에서도 1인 상품(메뉴) 개발과 1인 좌석 배치에 나서는 사례들이 잇따르고 있다.
배달업계에도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중국음식점이나 배달 가능 식당들이 흔히 고수하는 원칙 중 하나가 '2인분 이상 배달 가능'. 그러나 이 원칙도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 최근 '1인분 배달'을 원하는 손님들이 부쩍 늘고 있기 때문이다. 수성구 만촌동에 있는 삼성반점의 임태용 사장은 "음식을 주문하는 손님 5명 중 1명은 1인분 배달을 요구하고 있다. 경기불황 탓도 있지만 손님들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어 1인분 배달에 나서기로 했다"고 밝혔다. 1인 전용 노래방도 있다. 북구 태전동의 킹카노래방의 경우 혼자 온 손님을 위해 전용 노래방을 마련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혼자서 실컷 분위기 잡고 놀 수 있도록 방음시설까지 갖춰 나홀로 손님을 끌고 있다.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구호로 삼는 1인 여행객도 증가 추세다. 내일투어 대구지사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1년까지 3년간 해외여행 예약 현황을 분석했더니 1인 여행객이 30%를 넘었다.
오동욱 대구경북연구원 사회문화연구팀장은 "지난해 삼성경제연구소가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1인 가구의 연간 소비지출은 50조원에 달한다. 1인 가구의 지출은 오락'문화서비스, 가정용품과 가사서비스업 등에서 4인 가구보다 훨씬 빠르게 늘고 있어 관련 산업은 소비시장의 핵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부작용도 불거져
1인 가구가 늘면서 이들을 노리는 범죄 등 새로운 사회적 문제도 나타나고 있다. 특히 1인 여성 가구를 노리고 성폭력을 저지르는 속칭 '발바리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나홀로 여성이 많이 사는 원룸촌이 표적이 되는 경우가 많다.
박봉수 대구경찰청 공보계장은 "전체 성범죄 5건 중 1건 정도는 1인 여성 가구를 대상으로 한 범죄인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성범죄 관련 TF를 구성해 예방에 나서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도 이들의 안전을 위해 여성 단독가구 지킴이, 노인 응급 케어 등 다양한 정책을 준비 중이다.
1인 여성 대상 범죄 못지않게 심각한 문제는 노인들의 '고독사'다. 지난해 보건복지부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홀몸노인은 120만 명 정도로 전체 노인 인구의 20% 수준이다. 고령화로 노인 인구가 증가하며 홀몸노인 비중도 점점 커지고 있는 것. 그러면서 집에서 홀로 죽음을 맞은 노인들이 뒤늦게 발견되는 뉴스도 잇따르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0년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인(65세 이상) 자살률은 10만 명당 80.3명 수준으로 OECD 25개국 중 1위다. 특히 인적교류'사회활동을 하지 않는 홀몸노인들이 고립감'소외감을 못이겨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런 문제들에 대한 해법을 찾기 위해 변호사들이 주축이 된 시민단체가 만들어졌다. 바로 한국1인가구연합이다. 이 단체는 이달 1일 서울 서초구 코리아비즈니스센터에 있는 서울본부 사무실에서 창립식을 열고 활동에 들어갔다.
글'사진 최창희기자 cche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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