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달 밟아 산으로 올라갈수록 안개인지 구름인지…
자전거로 여행하다 보면 보이는 것이 자연이다. 늘 같은 자리에 있지만 갈 때마다 다른 모습으로 나를 반겨주는 게 또한 자연이다.
이번에는 자연 속으로 좀 더 깊이 들어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 여행지는 경상북도수목원이다.
경주 안강읍을 지나 신광면으로 가는 길의 농촌 풍경은 아름다웠다. 어릴 적 보았던 그 풍경 그대로였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수목원 8㎞'라는 이정표가 보였다.
경상북도 포항시 죽장면 상옥리 1-1번지 해발 650m에 위치한 경북수목원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고산지대에 있는 수목원이다. 2001년 개원해 식물 1천501종, 17만여 본을 보유하고 있으며, 3천222㏊로 국내 최대 수목원이다.
올라갈수록 안개인지 구름인지 온통 하얀 세상이다. 앞도 옆도 보이지 않아 후미등을 켜고 천천히 달렸다. 산 아래 풍경도 보이지 않았다. 꼭 구름을 타고 나는 신선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신이 났다. 얼굴에 스치는 맑은 공기에 고글도 벗고 모자도 벗었다. 자전거를 세워놓고 신발과 양말도 벗었다. 두 손을 모아 입에 대고 구름 속으로 '야호' 하고 외쳤다. 보는 이도 없고 해서 이러저리 막 뛰어다녔다. 얼마나 신이 나던지 개구쟁이처럼 웃었다. 그렇게 하니 쌓인 스트레스가 다 풀렸다. 지금 생각하면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어쨌든 신나고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끝없는 오르막이 이어졌다. 얼마나 페달을 밟았을까 드디어 수목원 정문에 도착했다. 이렇게 높은 곳에, 이렇게 멋진 수목원이 있다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입장료는 없었다. 어디서부터 둘러봐야 할지 두리번거렸다. 그만큼 규모도 컸고 아름다웠다. 하나하나 둘러보기로 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을 여태껏 몰랐을까'라고 할 정도로 구경거리가 많았다.
한참을 구경하다 주위를 둘러보니 경산에서 온 장애 어린이들이 단체로 관람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반갑다'며 고사리손을 흔들어줬다.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표정이 얼마나 예쁘고 귀엽던지. 아이들에게 꽃과 숲, 나무, 그리고 자연이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아름다운 것을 많이 보고 기억이 남는 시간이 되기를 빌었다. 이날은 유달리 유치원 버스가 많이 보였다. 자연학습장으로 이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수목원은 볼 것이 너무너무 많았다. 종일 둘러보아도 다 못 볼 것 같았다. 꽃 한 송이, 나무 한 그루마다 이름이 붙여져 있었다. 1시간 코스, 2시간 코스, 3시간 코스로 나눠 관람할 수 있도록 돼 있었다.
꽃과 나무, 숲 외에도 체험관 등도 잘 조성돼 있었다. 특히 황톳길은 맨발로 걸을 수 있어 좋았다. 양말을 벗고 걸었다. 편안하기도 했지만 발에서 느껴지는 감촉이 이루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느낌이 좋았다.
꽃나무 터널도 있고, 연못, 습지도 있었다. 연못에는 큼지막한 잉어들이 여유롭게 헤엄치고 있었는데, 유치원생들은 무엇이 그리 신이 나는지 정신없이 구경하고 있었다.
꽃향기와 이름 모를 나무향기는 정신이 몽롱해질 정도로 좋았다. 새소리 또한 아름다웠다. 그저 '좋다'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자연에 반하고 취해버렸다. 이번 여행은 이제껏 달려온 자전거 여행에 쌓인 피로와 힘듦이 해소되는 것 같아 몸과 마음이 가벼웠다.
이젠 돌아가야 할 시간. 이번 여행만큼 돌아가기 싫은 것은 처음이었다. 누구든지 이곳에 오면 이런 기분이 들 것 같았다. 마음은 가야 되는데 하면서도 발길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대구로 향했다. 돌아오는 길에도 하얀 안개가 달리는 내내 동행해 주었다. 그래서 더 행복했다.
윤혜정(자전거타기운동본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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