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로 그리는 경북 스케치] <27>별빛 가까운 그 곳, 영천

입력 2013-06-26 07:26:09

경주와 영천을 잇는 시내버스 길은 경주시 서면 아화리를 거쳐 영천시 북안면 임포리로 넘어가는 코스가 유일하다. 오후 5시부터 경주역 인근 성동시장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노선도' 상에는 305번이 경주역에서 북안면 임포리로 하루 3차례 운행하는 것으로 표시돼 있었다.

시계바늘은 30분을 지나 1시간이 넘어가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버스가 오지 않았다. 1시간 30분. 인내심의 임계점이다. 시내버스를 운행하는 금아버스그룹에 전화해 연유를 따졌다. "그 노선은 올해 초에 변경됐어요. 305번은 아화리에서 임포리까지만 운행합니다. 일단 아화리로 가셔서 갈아타세요." 변경된 노선은 버스 업체 홈페이지에서만 확인이 가능하다. 심지어 버스정류장에도 옛 노선이 표시돼 있다. 어쩌란 말인가.

아화리로 가는 버스는 300번, 300-1번부터 305번까지 7개 노선으로 2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아화리에서 임포리로 가는 경주 시내버스는 하루 3편 밖에 없지만 다행히 영천 시내버스가 하루 4편 아화리로 들어온다. 이튿날 오전 7시 10분 경주역 에서 300-1번을 타고 40분을 달리니 아화리다. 30분 가량을 기다려 오전 8시 10분 아화리에서 영천 시내버스 753번으로 갈아탔다. 다시 40분을 달리면 영천공용버스터미널이다.

◆별빛과 가장 가까운 천수누림길

영천에서 가장 유명한 장소는 보현산천문대다. 국내 최대 지름의 망원경 덕분이다. 영천시가 '별'을 도시 브랜드로 내세우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영천공용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1시간 가량 달리면 보현산 자락인 정각리 별빛마을에 도착한다. 보현행 버스를 타면되는데 임고면 방면과 화남면 삼창리 방면으로 나뉜다. 보현산을 크게 돌아 영천시내로 되돌아오기 때문에 어느 방향을 택해도 상관없다.

별빛마을에서 보현산 천문대까지 걸어가겠다면 말리고 싶다. 천문대까지 거리는 6.7km. 찻길로 오르다가 숲길로 빠지면 거리는 줄겠지만 가파른 오르막인데다 뜨거운 아스팔트 위를 2시간은 걸어야한다. 1시간쯤 땀을 뻘뻘 흘리며 헉헉거리다 결국 포기하고 승용차를 얻어 탔다.

천수누림길은 보현산 천문대 주차장에서 능선을 따라 나무데크를 걷는 길이다. 해발 1,000m의 고지를 따라 걷다가 천문대로 돌아오는 2.2km 구간. 두 발로 딛는 산 능선과 까마득한 산 아래 풍경은 마치 구름 위를 걷는 듯했다. 길 옆에는 야생화가 가득하고 벌들이 욍욍 날아다녔다. 길 중간에는 별 모양으로 만들어진 전망대도 있다. 전망대 꼭짓점에 서면 저멀리 별빛마을이 손에 잡힐 듯하다.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이 조성된 시루봉 위에 서면 사방에 막힘이 없다.

보현산 천문대는 국내 최대인 지름 1.8m 망원경이 있는 곳이다. 방문객센터에는 천체 사진과 거대 마젤란 망원경에 대한 설명, 태양과 달, 목성의 중력을 알 수 있는 저울이 설치돼 있다. 하지만 오랜 시간 눈길을 잡아둘 정도는 아니다.

◆빛바랜 추억이 된 자양면 이야기

별빛마을 입구로 돌아와 오후 3시에 자양면을 거쳐 영천시내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영천댐 상류에는 물안경을 끼고 다슬기를 잡는 주민들이 보인다. 강변에는 캠핑족들이 친 텐트가 알록달록한 퀼트를 짜둔 듯 했다. 영천댐 도로를 시작으로 충효삼거리~도일리~보현리~노항리~삼귀리 등을 잇는 33km 구간은 국내 최대의 벚나무 터널이다.

자양면은 영천댐과 함께 전체 면적의 80%가 물에 잠긴 마을이다. 1980년 영천댐이 건설되면서 성곡 1,2,3리와 노항리, 삼귀리, 충효리 등 6개 리가 물에 잠겼다. 당시 주민 3천여명 가운데 2천여명이 전국 각지로 뿔뿔이 흩어졌다. 지금도 날씨가 가물어 물이 빠지면 옛 자양초등학교 교실과 교문, 우물터, 학교 화단이 모습을 드러낸다.

영천댐을 한 눈에 조망하는 성곡리에는 지난 2011년 망향공원이 조성됐다. 자양면의 소개와 수몰 전 사진, 수몰 전 모습 재현 모형, 자양초교 사진 및 유물 등을 보여주는 전시관과 쉼터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고려때부터 있었다는 자양면의 옛 얼굴은 빛바랜 사진으로만 남아있다. 자양면이 고향인 장해규(57) 자양면사무소 면장은 사라져가는 기억들을 아쉬워하다가 올 3월 '자양면이야기'라는 책을 제작했다. 자양의 역사와 인물, 문화유산, 수몰 이전 모습 등을 13가지 주제에 나눠 실었다. 수몰 전 모습들을 모은 사진들도 풍부하게 담았다. 이 책은 주민들 사이에 화제가 됐다. 초판으로 찍은 1천500부가 모두 동이 났을 정도다. 장 면장은 "최근 들어 고향을 떠났던 이들이 돌아오고 있다"고 했다. 귀소본능인 셈이다. 고향을 떠났던 30여가구가 돌아왔다. 일흔 살이 훌쩍 넘어 고향으로 돌아오는 이들도 있고, 귀농, 귀촌을 하는 젊은 층도 있다. 자양면은 지난해 영천시내 면 지역 중에 유일하게 인구가 늘었다.

◆승마와 휴식을 함께 즐기는 운주산

영천시내로 돌아오는 길에 임고서원과 운주산 승마자연휴양림도 들러볼 만하다. 영천시내에서 운주산 승마자연휴양림까지 하루 7차례 버스가 오간다. 임고서원은 고려 말 충신인 포은 정몽주 선생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지은 서원이다. 근래 새 단장을 했지만 아직 안내판이 부족하고 썰렁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임고서원 앞에는 은행나무 노거수가 자라고 인근 임고초교 운동장에는 거대한 플라타너스가 서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운주산 승마자연휴양림은 산림욕과 승마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장소다. 소나무 숲속에 아름답게 꾸며진 휴양림에는 숙소와 놀이터, 물놀이장 등과 함께 승마장과 산악승마로 등을 갖추고 있다. 버스에서 내려 200여m를 걸어가면 승마장이다. 이 곳에 있는 말은 모두 52두. 영천시 소유도 있고 개인 마주가 맡겨둔 말도 있다.

승마용 말은 성적이 떨어진 경주마를 전환하는 경우가 많다. 대략 한 필 당 400만~500만원이지만 승마대회 출전을 목적으로 훈련을 받는 말들은 1천만원 이상, 심지어 억대를 호가하기도 한다. 말과는 교감이 중요하다. 말은 소리에 민감해 갑자기 소리를 지르거나 손을 올려 때리는 시늉을 하면 크게 겁을 먹고 날뛰게 된다. 말 가까이 접근할 때는 말의 얼굴 왼쪽으로 접근해야한다. 말은 왼쪽을 더 편안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말이 경마장을 달릴 때 왼쪽으로 도는 것도 같은 이치다. 말에게 다가설때는 우선 손등을 말코에 대서 안심시킨 뒤 목덜미를 툭툭 건드려 경계를 푼다. 말이 사람을 길들이는 경우도 있다. 초보자가 타면 움직이는것 자체를 거부하거나 고개를 흔들기도 한다. 정웅규 교관(37)은 "승마는 사람과 말이 교감하며 인내하고 양보하는 운동"이라고 강조했다. 정 교관이 동산이를 데리고 나왔다. 열 한살된 거세마다. 안장을 잡고 한쪽 발을 발판에 건 뒤 힘껏 다리를 차올리며 올라탔다. 천천히 승마장을 돌다가 입으로 '쯔쯔쯔' 소리를 내며 말허리를 가볍게 차자 동산이가 속도를 높였다.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말의 움직임을 따라가려 애썼지만 좀처럼 리듬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바짝 잡은 고삐에는 잔뜩 힘이 들어가고 몸은 움츠러들었다. 동산이가 거북한지 고개를 들어 흔들었다. 불편하다는 표현이다."등에 탄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일부러 떨어뜨리기도 하니까 조심하세요." 정 교관의 조언에 바짝 긴장했지만 다행히 동산이의 성격은 운주산에서도 순하기로 유명하다. 안장에서 발을 빼고 편안하게 앉아 고삐를 늦췄다. 말에게 자연스럽게 맡기니 둘다 훨씬 편해졌다. 사람도 말도 모두 마찬가지인듯 싶다. 글'사진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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