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초부터 네덜란드의 식민지가 됐던 인도네시아. 제2차세계대전 중 인도네시아를 점령한 일본군은 자바 섬 암바라와의 버려진 군 막사에 이곳에 살던 수천 명의 네덜란드 여성과 어린이를 수용했다.
1944년 2월. 이 수용소에 일본군 트럭이 들이닥치면서 21세 네덜란드 여성 얀 러프의 삶은 치욕이 됐다. 수용소 여성을 도열시킨 일본군은 10명의 젊은 처녀를 골라 트럭에 태웠다. 얀도 그중 한 명이었다. 이들은 47㎞ 떨어진 스마랑 시의 옛 네덜란드 식민 관사로 끌려갔다. 이곳은 일본군용 위안소로 개조되어 있었다.
도착 첫날 일본군은 끌고 온 여성들의 사진부터 찍었다. 사진은 1층 현관에 내걸렸다. 일본군은 입구에서 사진을 보고 '여자'를 골랐다. 얀은 한순간에 일본군 성 노예로 전락했다. 밤낮으로 강간을 당하고 두들겨 맞았다. 얀은 몇 달 뒤 다른 수용소로 옮겨졌다. 하지만 일본군은 이곳에서 있었던 일을 발설하면 가족을 포함해 모두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얀은 50년이 흐른 1994년에야 '50년의 침묵'이란 제목의 책을 써 당시 일본군의 만행을 고발했다.
1948년 인도네시아 바타비아(수도 자카르타의 옛 이름)에서는 스마랑 사건을 단죄하기 위한 임시 군법회의가 열렸다. 얀처럼 일본군이 인도네시아 점령 중 17~28세의 네덜란드 여성 35명을 연행해 스마랑에 있던 위안소에 감금하고 강제로 매춘을 시킨 사건을 다뤘다. 이 재판에서 모두 11명의 일본 장교 및 군속이 유죄판결을 받았다. 오카다 게이지 육군 소좌에게는 사형이 선고됐다. 재판은 끝났고 일본군이 여성을 강제로 끌고 가 성 노예로 삼았다는 분명한 기록은 남았다.
하지만 아베 내각은 끝까지 이를 숨겼다. 1차 집권기였던 지난 2007년 3월에도 '정부가 발견한 자료에는 군에 의한 강제 연행을 보여주는 기술이 없다'고 오리발을 내밀었다. 그러던 아베 내각이 "'정부가 발견한 자료'가 무엇이냐"는 일본 공산당의 질의에 '바타비아 임시 군법회의'자료라고 최근 밝혔다. 위안부 강제 연행에 일본군이 개입했음을 확인한 재판 기록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이로써 그동안 위안부 강제 연행의 증거가 없다던 일본 정부의 주장은 거짓이었음이 스스로 드러났다. 이젠 일본 정부가 군이 강제 연행에 나선 사례는 '스마랑 사건 하나뿐'이라고 주장하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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