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행복편지] 맹 기사의 예술 사진

입력 2013-06-25 11:30:55

"아니, 맹 기사, 당신 모가지가 몇 개요? 도대체가 말이지…."

마지걸 공보계장의 족제비눈이 더욱 날카롭게 찢어지고, 누런 금이빨 사이로 침에 튀긴 말들이 따발총 총알처럼 쏟아져 나왔습니다.

"뭘 말입니까, 계장님."

"정말 몰라서 묻는 거요. 나 원 참. 게시판 사진은 왜 아직 안 갈아붙였소. 그저께 토요일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새로운 사진으로 갈아붙이라는 군수님의 하명이 있었다고 내가 몇 번이나 닦달하던가요?"

"아, 예, 그게, 저, 그러니까…."

"그 게고 저 게고 간에 오늘 중으로 처리하고 보고하시오. 간부회의에서 군수님이 얼마나 노발대발하시던지. 중앙행정평가단의 우리 군청 방문일이 모레로 코앞인데, 청사 입구 게시판 하나 산뜻하게 꾸며내지 못하는 공보계는 도대체 무얼 공보하는 공보계냐고 메가톤급 꾸중을 내렸단 말이오."

"군정 추진에 관한 사진은 준비되었는데 군수님의 따스한 마음을 잘 드러내는 사진이 없어서. 요즘은 양로원이나 고아원 방문 행사도 없었고 해서…."

"참 답답하고 맹맹한 양반이네. 요령껏 하라고, 요령껏! 비서실 미스 고의 종아리를 찍든지, 군수님이 자주 가는 맥다방 마담의 콧잔등을 박든지, 굽든지, 볶든지, 튀기든지 말든지 어쨌든 오늘 중으로 처리하시오."

거품을 물던 계장이 쾅, 문 닫는 소리를 남기고 사무실 밖으로 사라졌습니다.

"커피 한잔 드릴까요?"

시선을 컴퓨터 화면에 꽂은 채, 미스 김이 뒷등 너머로 말을 날렸습니다. 작성해야 할 문건 더미 속에 파묻힌 미스 김의 희고 가는 손가락이 부지런히 움직일 때마다 불려나온 글자들이 화면 가득 도열하고 있었습니다.

"괜찮아, 미스 김도 너무 바빠 옆 돌아볼 틈도 없겠네 뭐."

"정말이지 미치겠어요. 빨리 평가단인가 뭔가 왔다 가야지. 쉴 새 없이 두드려도 끝이 없으니. 어제도 밤 11시에 퇴근했어요. 그런데 맹 기사님, 좀 요령껏 하세요. 한참 동생벌되는 계장한테 막말 뒤집어쓰며 혼이나 나고."

"계장님도 군수님한테 혼이 났다지 않아. 나 때문에."

"하기야 요즘 이 청사 안에 제 정신인 사람 어디 있어요. 그놈의 행정평가 잘 받으면 이 변두리 군이 특별시가 되고 군수가 장관이라도 되는지 원."

"옷섶이나 좀 여미고 해. 가슴이 다 보이잖아."

"어머, 어머."

앵앵거리는 미스 김을 뒤로하고 맹 기사는 사무실을 나섰습니다.

'참, 나도 한때는 예술사진 작가였는데. 밥줄이 개 모가지의 쇠줄이라….'

카메라 가방을 고쳐 메고 시장 쪽으로 가던 맹 기사의 눈 속으로 초등학생 일여덟 명이 걸어 들어왔습니다. 일 학년쯤 되었을까. 병아리 떼처럼 재조갈 재조갈 떠들며 오는 모습에 눈길을 주다가 문득 '요령'이라는 말이 번개처럼 맹 기사의 뇌리를 스쳤습니다.

'그래, 그거다!'

맹 기사는 급하게 카메라를 꺼내 들고 아이들 앞을 막아섰습니다.

"애들아, 아저씨가 너희들 사진 찍어줄까?"

"왜요? 무슨 사진인데요?"

한 녀석이 맹랑한 눈빛으로 올려다보며 몸을 사렸습니다.

"미술관에 걸어둘 예술사진이지. 너희들이 너무 예쁘고 귀여워서 좋은 작품이 나올 것 같은데. 사진 찍고 나면 아저씨가 떡볶이도 사줄 게."

맹 기사는 서로 쳐다보며 어리둥절해하는 아이들을 급하게 몰아 시장 안 신발가게로 갔습니다. 고향 후배인 가게 주인한테 한쪽 눈을 찔끔 감아 보이고는, 아이들한테 운동화를 한 켤레씩 들고 늘어서서 포즈를 취하게 한 뒤 연방 셔터를 눌러댔습니다.

"야, 치즈 해봐. 치~즈. 아니 이쪽으로 봐야지. 그리고 운동화를 높이 들어. 그래, 그래. 오케이 한 번만 더. 그렇지. 좋아. 이제 끝났어. 모두 운동화는 돌려주고 떡볶이 먹으러 가자."

이튿날 오후. 간부들을 대동하고 마지막 점검에 나선 군수님이 게시판 사진을 한참 들여다보더니 갑자기 기차 화통 삶아 먹은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이봐! 당장 맹 기사 불러. 저, 운동화를 선물 받고 기뻐한다는 은혜원 아이들 사진, 어떻게 된 거야!"

"여, 영감님, 그 사진에 뭐가 자, 잘못되었습니까?"

공보계장이 족제비눈을 한껏 내리깔며 더듬거리자 군수님은 더욱 화가 나 노발대발에다 핏발까지 세워댔습니다.

"저, 저, 오른쪽에서 두 번째 서 있는 저 녀석은 내, 내 손자란 말이야!"

김동국/시인 poetkim1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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