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마시면 잠이 온다? 새벽이면 어김없이 눈이 번쩍!
잠을 제대로 못 자는 수면장애는 매우 다양하며, 국제적으로 약 84가지로 분류돼 있다. 대표적으로 잠들지 못하는 불면증, 낮시간에 졸리는 주간 졸림증, 수면 중 발생하는 몸의 움직임이나 이상행동(몽유병) 등이 있다. 가장 흔한 수면장애는 불면증이다. 원인은 매우 다양하다. 우울증이나 불안신경증의 주된 증상도 불면증이다. 우울증 진단기준에도 불면증이 있다. 불면증을 동반한 우울증 환자의 자살 위험이 높고, 불면증이 처음 나타난 지 1년 뒤 우울증 발생 위험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훨씬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 밖에 불안장애, 파킨슨병, 천식, 갑상선 기능장애, 신부전, 당뇨, 관절염 등에서도 드물지 않게 나타난다. 만약 ▷매번 잠들기가 너무 힘들어 1시간 이상 걸릴 때 ▷잠을 자려고 하면 온갖 생각이 떠올라 잠이 안 올 때 ▷자다가 자주 깨고, 깨면 다시 잠들기 힘들 때 ▷너무 일찍 일어날 때 ▷자고 나도 잔 것 같지 않고 피곤할 때 ▷앞서 문제가 1개월 이상 계속 될 때 등의 증상이 있으면 수면클리닉을 찾아야 한다.
◆잠에 대한 강박관념 떨쳐내야
회사원 박정률(가명'45) 씨는 매사 철두철미하고 원칙을 지키는 사람이다. 남들이 "강박증이 있냐?"고 농담할 정도로 일처리가 꼼꼼하다. 그런 박 씨에게 최근 고민이 생겼다. 벌써 몇 주째 잠을 자지 못하는 것. 나름대로 시간을 정해놓고 잠자리에 들지만 오히려 침대에 눕고 나면 정신이 말똥말똥해져서 몇 시간씩 뒤척이곤 한다. 새벽 무렵에야 설핏 잠이 들고 숙면을 취하지 못한 탓에 개운치 못한 느낌을 갖고 아침에 눈을 뜨곤 한다. 결국 박 씨는 수면장애클리닉을 찾았다.
'만약 잠을 못 자면 어떻게 될까?' 하며 걱정하는 환자들이 많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개 평범한 사람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결국 잠에 빠져들게 된다. 길어도 사흘을 넘기지 못한다. 하지만 불면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은 이런 말에 대한 확신이 없다. 졸려서 잠을 청하는 것이 아니라 잠을 자기 위해 침대에 눕다 보니 '침대 공포증'까지 생긴다.
전문가들은 억지로 잠을 청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침실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 가능한 한 조명을 어둡게 하고 책을 보거나 조용한 음악을 들으며 잠을 기다리고, 졸리면 그때 침대에 눕는다. 이러다가 잠이 부족해 이튿날 일도 못할 정도로 피곤하면 어쩌나 걱정하게 된다. 하지만 일부러 잠을 쫓으라는 말이 아니라 졸리지 않으면 눕지 말라는 뜻이다. 대부분 불면증 환자들은 '누워서 눈이라도 감고 있어야 피로가 풀린다. 아니면 큰 병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잘못된 믿음을 갖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도 일정하게 유지해야 한다. 새벽녘에 겨우 잠이 들었다고 오전 11시가 넘어서 일어나면, 결국 그날 밤 같은 상황이 생겨서 아침 늦게 일어나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숙면을 취하기도 힘들다. 매일 항상 일정 시간에 일어나는 것도 불면증 극복의 중요한 행동기법 중 하나이다. 물론 낮시간 동안 잠을 자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알코올은 오히려 숙면을 방해
영업사원인 정원탁(가명'38) 씨는 업무상 술자리가 잦다. 회식 후 잠자리에 들면 기절하듯 금세 잠에 빠진다. 하지만 문제는 새벽녘에 반드시 깬다는 것. 술기운이 채 가시지 않아 몸은 잔뜩 피곤한데도 다시 잠이 들지 않아 내내 뒤척거리기만 한다. 결국 낮시간에 피로를 풀기 위해 사우나를 찾아 한 시간 정도 잠을 자는 것이 습관이 돼 버렸다.
더 큰 문제는 그런 날이면 저녁에 잠을 청할 수 없다는 것. 결국 집에서도 술을 마시고 자는 것이 버릇처럼 됐고, 다시 새벽이면 깨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정 씨는 술을 마시고 자면 오히려 더 피곤하다고 하소연한다.
잠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가지 물질 중에 알코올이 있다. 대부분 불면증상을 가진 사람들은 잠을 자기 위해서 술을 마셔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처음 한 잔으로 충분히 잘 잤는데 시간이 갈수록 점점 술의 양은 더 늘어난다.
혈중 알코올 농도가 올라갈 때는 잠이 오지만 시간이 지나 알코올 분해가 시작하고 알코올 농도가 떨어지면 오히려 각성 작용이 나타난다. 술을 마시고 잠들었다가 새벽에 꼭 깨는 것을 대부분 한두 번쯤 경험하게 된다.
술에 취해 잠을 자면 신체적'정신적 피로를 회복시키는 깊은 수면과 렘수면이 줄어든다. 특히 수면 무호흡증이 있는 환자의 경우, 술을 마시면 인후부 근육이 이완돼 기도가 더 좁아지고 코골이와 무호흡은 더욱 심해진다.
◆수면제, 무작정 겁내도 안 되지만 남용도 곤란
수면제 사용에 대해 두 가지 의견이 있다. 반대하는 쪽은 ▷불면증은 수면제로 치료하는 것이 아니며 ▷수면제로 인해 인지기능이 낮아질 수 있고 ▷노인들의 경우 근육이 이완돼 넘어지거나 떨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찬성하는 쪽은 ▷대부분 환자들에게 수면제 의존이 생기지 않으며 ▷용량을 늘려 먹는 경우도 거의 없고 ▷최근 나온 수면제는 기억력 저하나 근육이완 등 부작용이 거의 없어서 장기간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대구가톨릭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종훈 교수는 "과거 오랫동안 사용한 수면제들은 벤조디아제핀계인데, 이 약물은 몸에 남아있는 시간이 길어서 이튿날 낮까지 머리가 맑지 않고, 신체적'심리적 금단증상도 있어서 쉽게 끊기도 힘들었다"며 "하지만 최근 생산되는 수면제의 경우, 단기간 작용하며 인지기능에 거의 영향을 주지 않는 것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종훈 교수는 "수면제를 장기간 사용하면서 '약을 먹여 잠을 재우기만 하는 치료'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다만 일시적인 스트레스로 인한 단기 불면증, 시차여행으로 인한 불면, 잠자는 리듬이 떨어진 노인에게 간헐적으로 비벤조디아제핀계 수면제를 적절히 사용하는 것이 필요할 때도 있다는 것. 이종훈 교수는 "불면증을 해결하려면 수면문제를 정확히 진단하고 인지행동치료를 포함한 종합적 치료가 필요하며, 수면제는 보조제로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도움말=대구가톨릭대병원
수면장애클리닉
이종훈(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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