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청송에서 태어나 아버지(권인환·權寅煥)를 따라 1907년 의병 활동에 참여했고 1915년엔 독립 비밀결사 '대한광복회'를 조직, 참모장을 맡아서 조국 광복에 헌신했던 권영만(權寧萬·1877~1950)은 1921년 오늘 대구에서 일제 경찰에 검거됐다. 혐의는 조선총독부 정무총감 미즈노 렌타로 등 일본 고관에 대한 암살 기도였다. 당시 미즈노는 조선총독 다음 서열로 오늘날 국무총리에 해당하는 인물이었다.
독립투사 박상진(朴尙鎭)·우재룡(禹在龍) 등과 고민하다 광복회를 조직한 그는 1917년엔 우재룡과 경주에서 대구로 수송 중이던 경주·영덕·영일 등 3개 경북 동해안 지역 세금을 탈취, 독립 군자금에 보탰다. 나아가 1920년 우재룡 등과 '주비단'을 만들어 군자금을 모아 상해임시정부에 보내 나라 밖에서의 독립운동 지원 활동도 펼쳤다. 그러던 중 재만서로군정서(在滿西路軍政署)의 비밀지령을 받아 거사를 준비했다. 마침 미국 의원단이 폭압적인 일제 지배에 대한 조사를 위해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었다. 총독부 수뇌부 제거 계획은 실패했고 그는 8년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러야 했다.
그는 출옥 뒤 대종교(大倧敎)에 입교해 종교 활동을 맡아 하다 조국 광복을 목격하고 1950년 민족상잔의 아픔인 6·25 남침 전쟁이 터지기 직전에 생을 마쳤다. 정부는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고 그를 기렸다.
정인열<서울지사장>
댓글 많은 뉴스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탄핵안 줄기각'에 민주 "예상 못했다…인용 가능성 높게 봐"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