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현장 새 바람 '학부모 선생님'
우리 주변에는 자식과 관련된 속담이 많다. 자식에 대한 사랑을 담은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고 한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표현이 있는가 하면 애증 섞인 '무자식이 상팔자'란 말도 흔히 쓴다. 모두 자식 키우는 어려움이 녹아 있다.
'어린아이 예뻐 말고 겨드랑이 밑이나 잡아 주어라'라는 속담도 있다.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귀여워만 할 것이 아니라 잘 가르치라는 뜻이다. 기쁨이 되어야 할 자식 때문에 마음 아파해야 할 일이 더 많은 우리 시대에 들어맞는 말이다. 이에 따라 최근에는 부모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면서 먼저 자신의 변화를 추구하는 학부모들도 늘고 있다. '가지 많은 나무에도 바람 잘 날 있는 날'을 꿈꾸면서….
◆토요일에는 학부모가 선생님
양성천(52) 씨는 지난달부터 매주 토요일이면 딸 서연이가 다니는 대구 달서구 와룡초교로 '출근'한다. 양 씨는 이 학교가 지난해부터 열고 있는 '토요 행복스쿨'의 선생님이다. 가르치는 과목은 검도와 탁구. 우리나라 최초의 검도 국가대표였던 정태민(작고) 씨에게 사사한 검도는 공인 3단이고, 탁구는 소년체전에 대구 대표로 출전할 정도의 뛰어난 실력을 갖췄다.
양 씨가 학교 자원봉사를 결심하게 된 것은 지난해 4월 딸을 통해 받아든 한 장의 안내장 덕분. '교육기부 활동에 관심 있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며 학교 및 자녀에 대한 이해가 높아질 것'이란 설명에 흔쾌히 결정했다.
양 씨는 "딸이 공부하는 교실에서 가르친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다"며 "2년째 참여하면서 학교에 대한 애정이 더욱 깊어진 것 같다"고 했다. 또 "학창시절 가장 추억에 남는 시기를 말하라면 대부분 초등학교를 꼽지 않겠느냐"며 "아이들이 부모, 선생님과 학교에서 함께 웃으며 꿈을 나누는 것은 정말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아이들의 눈빛도 달라졌다. 처음에는 인사도 제대로 하지 않던 '제자'들이 눈높이에 맞춰 게임과 농담을 곁들여 지도했더니 요즘은 바른 자세로 먼저 인사를 한다. 양 씨는 "학교 폭력과 교권 추락이 사회적 이슈가 된 지 오래이지만 직접 가르쳐보니 인성교육은 결국 부모에게 달려 있는 것 같다"며 "전학 이후 힘들어하던 딸도 아빠와 함께 운동하면서 사교성과 배려심이 길러진 듯해 기쁘다"고 자랑했다.
교육부의 '학부모 학교참여 시범학교'로 지정된 이 학교에는 양 씨와 같은 교육기부 학부모가 무려 106명에 이른다. 배드민턴'줄넘기'축구'음악'종이접기 등을 직접 가르치는 재능기부자(20명)도 있지만 ▷도움교사로 수업에 참여하는 봉사기부자 ▷기부활동 전반을 운영하는 기부코디자 등이 훨씬 더 많다. 매주 수요일에는 학부모들이 모여 수업 준비 및 강의에 대한 의견을 나누기도 한다. 특별한 재능이 있어야만 참여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자녀들을 생각하는 마음만 있으면 되는 셈이다.
이 학교 강용운(36) 교사는 "매주 토요일 다양한 프로그램이 학부모들의 봉사로 진행되는데 평소 수업시간에 배우지 못한 과목들이라 아이들이 무척 즐거워한다"며 "교육부'서울대 학부모학교참여센터에서 관람을 올 정도로 진정한 의미의 학부모 참여 모델이 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수강생에서 교육 강사로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는 2남 1녀를 둔 박용경(46) 씨는 평범한 워킹맘이었다. 그러나 2011년, 중학교 1학년이던 큰아이가 학교폭력에 경미하게 연루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인생이 바뀌었다.
박 씨는 자녀 교육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한 끝에 아이에게 모든 시간을 할애하기로 마음먹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 또 올바른 정보를 알기 위해 지난해 4월부터 8개월 동안 대구교육정보원 '학부모 역량개발센터'에서 매주 14시간씩 꼬박꼬박 수업을 들었다. 학교에서 보내주는 가정통신문을 통해 알게 된 '학부모 대학'이었다.
박 씨는 "교육을 통해 많은 도움을 받았기에 다른 사람에게도 알려주고 싶어 아이 학교의 학부모회에 열심히 참여하게 됐고 총학부모회 회장까지 맡게 됐다"며 "아이도 성격이 차분해지고 자기 삶을 찾게 돼 1차 목표는 달성한 것 같다"고 귀띔했다.
그는 올해부터는 대구시교육청의 학부모교육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연간 20차례 대구지역 중학교를 찾아가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강연한다. 자녀 교육을 막연하게만 생각하는 대다수 학부모에게 자신의 경험을 나누면 도움이 되고, 지역의 청소년들이 글로벌 리더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박 씨는 "또래 자녀를 키우는데다 같은 교육을 먼저 받은 수강생 출신이어선지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고들 이야기한다"며 "부모가 제대로 교육을 받아야 자녀들도 잘 지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두 딸이 고교 1학년, 중학교 3학년인 장선아(45) 씨 역시 '교육 수요자'에서 '교육 공급자'로 입장이 바뀐 경우다. 장 씨는 2010년 유방암 수술을 받은 뒤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방황하는 사춘기 딸아이를 이끌어주고, 힘든 치료 과정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알게 된 '학부모 대학'은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지난해 5개월간에 걸쳐 160시간의 교육을 수료한 장 씨는 지난 4월과 5월에 대구 수성구, 달성군의 초등학교에서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강연에 나섰다. 건강하지 않은 몸 상태에도 꼼꼼하게 수업을 준비했던 터라 반응도 좋았다.
장 씨는 "암을 극복하기 위한 동기부여로 학부모 교육에 참여했지만, 가족을 좀 더 이해하고 관계를 개선하는 데에도 많은 도움을 받았다"며 "사회 경험이 거의 없던 터라 강의를 앞두고 많이 긴장됐지만 비슷한 경험을 갖고 있는 어머니들이 오히려 칭찬을 해주셔서 용기를 얻고 있다"고 했다.
자아발전을 위해 더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에 심리상담사 1급, 감성코칭지도사 2급 자격증까지 취득했다는 장 씨는 특히 "아이들의 인성을 바꾸기 위해서는 학부모 자신이 먼저 달라져야 한다"며 "딸아이 휴대전화 연락에 '엄마' 대신 '인생의 멘토'라고 적힌 걸 보고 가슴이 뭉클해졌다"고 덧붙였다.
◆학부모 역량 개발이 답
'부모는 멀리 보라 하고, 학부모는 앞만 보라 합니다. 부모는 함께 가라 하고, 학부모는 앞서 가라 합니다. 부모는 꿈을 꾸라 하고, 학부모는 꿈꿀 시간을 주지 않습니다.' 한때 많은 학부모들에게 화두를 던져줬던 '부모와 학부모의 차이'라는 공익광고다.
실제로 많은 학부모들은 훌륭한 부모가 되기를 원하지만 막막하기만 한 경우가 흔하다. 대구시교육청이 바람직한 학부모상 구현과 가정의 교육기능 회복으로 학생들의 올바른 인성을 함양하자는 취지에서 실시하고 있는 '학부모 역량 개발 프로젝트'를 모르는 학부모들도 적지않다.
이 프로젝트는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운영된다. 첫째는 전 학부모에게 '자녀교육 가이드북'을 배부, 자녀의 성장발달 단계와 자녀 특성에 따라 교육정보를 공유하고 가정에서의 교육력을 제고한다. 0~2세, 유치원, 초1~3, 초4~6, 중'고'특수학교, 특성화고 8종을 발간했으며 교재는 온'오프라인으로 제공한다.
둘째는 교육을 통한 학부모의 역량 개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초'중'고 및 특수학교에서 운영하는 기본 교육과정은 3시간씩 10회 운영되며, 이를 위해 교육과정 편성'운영 기준 개발, 자녀교육서 발간, 교육강사 인력풀을 제공해 보다 많은 학부모가 전문적인 연수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특히 학교에서 운영하는 연수에 참여하기 어려운 학부모들은 가까운 종교단체, 백화점 문화공간, 희망하는 직장 등에서 실시하는 학부모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도 있다. 학부모들의 교육 참여 기회를 확대하고 부담감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지난 4월부터는 지역 민영방송과 케이블 방송을 통해 가정에서 시청할 수 있도록 했다.
심화과정은 각 교육지원청과 공공도서관에서 운영한다. 기관의 특성을 살려 소수의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자녀 교육에 꼭 필요한 특색 있는 강좌를 운영한다. 전문과정은 대구학부모역량개발센터를 중심으로 아버지대학, 학부모대학을 운영한다.
우동기 대구시교육감은 "학부모 역량 개발 프로젝트는 자녀교육을 잘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길"이라며 "이 교육을 통해 '내 아이가 아닌 우리 아이 함께 키우기'에 동참하는 학부모가 늘어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문의 대구시교육청 학부모교육담당 053)757-8501.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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