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소득층에 무상 임대 월세 대신 5-15만원 저축
20일 오후 대구 동구 서호동 한 주택. 두 달 전만 해도 이곳은 잡초가 무성하고 쓰레기가 뒹구는 빈집이었다. 5년 동안 방치됐다. 하지만 이날 말끔하게 단장한 집 앞에는 레드카펫이 깔렸다. 재능봉사자 150여 명은 두 달 전 집주인의 동의를 얻어 새로운 집으로 탄생시켰다.
이날 새롭게 입주하는 2가구를 축하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참석자들은 액운을 쫓고 안정적인 정착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박 바가지를 발로 힘차게 깼다. 자원봉사자와 이웃 주민들은 쌀과 화장지, 세제를 선물로 전달한 뒤 시루떡을 잘라 나눠 먹었다.
권성기 한국해비타트 대구경북지회 건축팀장은 "낡아 화재 위험이 있는 전기선을 새로 설치하고 끊어진 상수도관을 이었다"며 "직장인과 대학생으로 이뤄진 순수 자원봉사자들이 참여함으로써 재료비밖에 들이지 않고 빈집을 리모델링했다"고 말했다.
도심 흉물인 빈집을 개'보수(본지 5월 2일 자 1'3면, 6월 13일 자 2면 보도)해 저소득층 가정의 보금자리로 무상 임대하는 '행복둥지' 제1호가 탄생했다. 행복둥지에 입주한 가구는 모두 한부모가구로 주거비 부담을 덜게 됐다.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생활해온 이들 가구는 평소 자립 의지가 강하고 도움이 절실하다는 점이 인정돼 입주자로 선정됐다.
◆"새집 맘에 들어요"
이날 행복둥지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A(35'여) 씨는 2년 전 이혼의 아픔을 겪고 3형제를 홀로 키우고 있다. 올해 큰아이는 초등학교 3학년(10)이고 둘째는 1학년(8), 막내는 일곱 살이다. A씨는 동구 효목동의 한 병원 간호사로 일하면서 시조모(83)를 모시고 있다. 아이들도 증조할머니를 잘 따르고, 증조할머니도 증손자들을 애틋하게 돌보면서 서로를 의지하고 있다.
월수입이 130만원가량인 A씨에게 그동안 월세 23만원(보증금 50만원)은 적지 않은 부담이었다. 생활비와 자녀양육비까지 빠듯하기 때문이다. 남자 아이 3명이 장난을 칠 때면 아랫집의 눈치도 봐야 했다.
A씨는 어려운 형편에도 5년째 재능기부 봉사를 해오고 있다. 근무가 없는 날과 밤 근무인 날의 낮 시간을 활용해 심리치료 상담과 영어강의 같은 자신의 재능을 기부해왔다. A씨는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와 가깝고 무엇보다 집 안으로 햇빛이 들어온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며 "금전적인 여유는 없지만 이번 입주가 계기가 돼 앞으로 더 많이 베풀며 살고 싶다"고 말했다.
A씨와 이웃이 된 B(43'여) 씨도 10년 전에 이혼을 하고 초등학교 6학년(12) 아들을 키우고 있다. 가까이에 사는 친정어머니(65)가 낮 동안 아이를 돌봐주고 있다. 예전엔 섬유공장에서 근무했었고 현재는 식당에서 일하고 있다. B씨 역시 월 100만원 정도의 소득으로 월세 20만원을 감당하기가 버거웠다. 전 남편이 사업에 실패하고 빚에 쪼들리면서 양육비 지원은 엄두도 못 내는 형편이다. B씨는 "많은 분들이 땀 흘려 수고해준 덕분에 이렇게 좋은 집을 얻게 됐다"며 "도와주신 마음을 잊지 않고 앞으로 열심히 살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오명화 대구 동구청 희망복지지원담당은 "이웃이 될 두 가정이 잘 어울릴 수 있게 비슷한 또래의 어머니 가장을 선정했고, 자녀들의 나이와 성별, 현재 다니는 학교의 거리 등도 고려해 입주자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대구 첫 시도 '행복둥지'
대구 동구의 행복둥지 사업은 많은 예산(1천만원)을 들이지 않고 민간자원을 연계하고 재능기부자를 활용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예산은 순수 재료비로 사용되고 나머지 일손은 해비타트 대구경북지회와 보일러설비협회 대구경북지회, 동구자원봉사센터 시니어재능나눔 봉사단, K2 시설대대 하늘손길봉사단 등 각계각층이 함께 나서서 돕고 있다.
이 사업은 흉물로 방치된 빈집을 번듯한 삶의 터로 재생하고, 자립 의지가 있는 저소득층 가구의 월세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올해 대구에서 처음으로 시작됐다. 빈집 8곳의 신청을 받아 수리하기에 알맞은 3곳(서호동 1곳, 신암동 2곳)을 선정, 올 5월부터 정비작업을 벌이고 있다. 그 결과 이날 제1호 행복둥지가 탄생했고 다음 달 안으로 나머지 2곳도 입주를 끝낼 계획이다.
입주자는 3년 동안 월세를 내지 않는 대신 매달 5만~15만원을 저축 형태로 적립해야 한다. 이 돈은 입주자들이 3년 뒤 다른 집으로 옮길 때 여유자금으로 다시 사용된다.
이재만 동구청장은 "지금까지 휴일조차 내놓고 구슬땀을 흘려준 자원봉사자들의 노력으로 저소득층 가구가 새로운 희망 터를 마련하게 됐다"며 "범죄의 온상으로 이용되거나 안전사고 위험이 있는 도심의 버려진 빈집을 재생하는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서광호기자 kozm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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