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 오지' 안동 숨실마을, "우리 동네도 버스 왔네"

입력 2013-06-21 11:26:37

첫 버스 운행…도로 늘리고 주차·회차 신설, 마을 생긴지 700년 만에

산과 강으로 둘러싸여
산과 강으로 둘러싸여 '도심 속 섬마을'로 불려왔던 안동시 남후면 무릉3리 숨실마을에 마을이 생긴 지 700여 년 만에 대중교통인 시내버스가 처음으로 들어온 20일, 권영세 안동시장 등이 참석해 안전운행 고사를 지내고 함께 축하했다. 엄재진기자

20일 오전 9시 30분. 구불구불한 들길을 따라 멀리서 시내버스가 '빵빵' 경적소리를 울리며 마을 어귀로 들어서자 주민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박수와 함께 만세 소리도 끊이질 않았다. 새벽잠을 설친 몇몇 어르신은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안동 도심과 불과 10여㎞, 면 소재지와는 2㎞ 정도 밖에 떨어져 있지 않지만, 산과 강으로 둘러싸여 '도심 속 섬마을'로 불려왔던 안동시 남후면 무릉3리 숨실마을에 시내버스가 처음으로 들어온 날이다. 마을이 생기고 사람이 살아온 지 700여 년 만의 일이다.

안동시가 지난해 주민들의 민원을 받아들여 3천여만원의 예산을 지원해 도로를 확장포장한 뒤 마을 입구에 버스가 들어올 수 있도록 주차장'회차장을 설치했고, 시내버스 회사들과 협의를 거쳐 하루 세 차례씩 버스를 운행키로 최종 확정했다. 도심과의 소통을 염원했던 주민들의 숙원이 풀린 것이다.

마을 앞 어귀에서 오른쪽으로는 국도 5호선, 왼쪽으로 중앙고속도로가 시원하게 뚫려 있고, 마을 앞으로는 지방도가 나 있지만, 그동안 주민들에게는 머나먼 바깥세상일 뿐이었다.

바깥세상에 드나들기 위해서는 오로지 1.5㎞의 구불구불한 들길을 걸어서 이용할 수밖에 없었던 이 마을 20여 가구 주민 40여 명은 이날 '역사적 사건'을 기쁨과 흥분, 그리고 설렘과 회한으로 받아들였다.

이날 권영세 안동시장과 권기탁 시의원, 권희택 안동버스 사장 등이 참석해 안전운행 고사를 지내는 등 기념식을 가지며 함께 기쁨을 나눴다.

이 마을 노인회장 김연규(79) 씨는 "눈앞이 바깥세상이지만 웬만해서는 나들이할 엄두를 못냈다"며 "살아생전 이렇게 집 앞마당까지 시내버스가 쑥 들어올 줄 몰랐다"고 말했다.

김동섭(61) 이장은 "겨울철이면 산과 석산개발업체 공장 벽에 가려 도로가 빙판길로 변하면서 어르신들이 미끄러져 다치는 사고가 잦았다"며 "이제 아낙들이 머리에 농산물을 이고 걸어서 시장에 내다 파는 어려움도 없게 됐다"고 기뻐했다.

이날 기념식이 끝나고 오전 10시쯤 시내버스가 마을을 떠날 때 마을 어르신 20여 명이 버스에 올라타고 시내 구경에 나섰다. 아무 걱정 없이 도시 나들이를 하고 오후에 버스를 타고 마을로 다시 돌아온 이 날이 숨실마을 주민들에게는 '천지가 개벽한 날'이나 다름없었다. 안동'엄재진기자 2000j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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