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변하지 말아야 할 것들

입력 2013-06-21 07:09:57

세상의 모든 것들은 변합니다. 세월이 지나면 사람도 변하거니와 사물 또한 점차 빛이 바래갑니다. 영화 '봄날은 간다'의 유명한 대사를 떠올려 보면 사랑마저 변하는 것 같아 보입니다. 이렇게 변화가 일상이다 보니, 변화는 미덕이요 변하지 않음은 촌스러움이자 죄악처럼 받아들여지기까지 합니다.

얼마 전, 한동안 연락이 닿지 않았던 여고 동창과 우연히 백화점 식품부에서 마주치는 일이 있었습니다. 세월 앞에 영원한 것은 없을 터, 항상 환한 미소를 지어대던 그 얼굴에도 어느새 세월의 흔적들이 골들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마치 엊그제 봤던 소녀들처럼 한참을 그렇게 같이 웃고 떠들었습니다. 그렇게 그 친구와 아쉬운 작별인사를 하고 돌아서며 생각했습니다.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어떻게 그 친구를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을까?' 그리고 저는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답을 알 수 있었습니다. 미소. 학창시절 누구보다 예뻤던 친구의 미소가 떠올랐습니다. 저는 그 미소를 무척이나 좋아했습니다. 세월은 친구의 겉모습을 바꾸어 놓았을지 몰라도 순수했던 그 미소만큼은 바꾸어 놓질 못했던 것입니다. 제게 있어 그 미소는 많은 세월이 흘러 모습은 몰라보게 변해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그 친구만의 정체성(Identity)이자 본질(Essence)이 되었던 것입니다.

광고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광고를 하고자 하는 대부분의 기업들은 항상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고 감각적인 광고를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자신의 정체성을 잃은 채 변화에만 집중하기도 합니다. 저는 이런 기업들을 볼 때면 예전 피어스 브로스넌이 모델로 등장했던 남성 정장 브랜드 갤럭시의 광고가 떠오르곤 합니다.

"당신은 젊죠."

"유행을 따르고 싶을 거예요."

"변화도 좋지만,"

"원칙을 지키세요."

"아마추어로 보여서는 안 되니까요."

위의 카피가 말하는 것처럼 원칙 없는 변화는 변질일 뿐이고, 정체성 없는 변화는 한갓 일탈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저는 광고 제작에 들어가기 전 꼭 거치는 작업이 있습니다. 저희에게 광고를 의뢰한 기업에 항상 변해야 할 것과 변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어떤 것인지를 광고주들과 대화를 통해 반드시 파악합니다. 광고 한 편으로 인해 그 기업의 정체성이 흔들려서는 안 되기에, 그리고 그로 인해 광고주와의 신뢰가 무너져서도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변하지 말아야 할 프로다운 광고인의 정체성이자 본질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대구YWCA 회장'대구백화점 상무 jschoi812@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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