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설 반세기 맞은 선관위 3.0 시대…돈은 묶고 말은 최대 풀어야죠\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과거와 크게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선관위는 선거운동을 전면적으로 허용하는 등의 공직선거법과 정당법 등 정치관계법 개정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규제'와 '단속' 위주의 선거와 정치 패러다임의 획기적인 변화에 나서고 있다.
올해로 창설 50주년을 맞이한 선관위는 투'개표 관리에서 불법선거운동 감시로 역할을 확대한 뒤 정치관계법 개정과 선거정치교육원 설립 등을 통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3.0 시대를 열고 있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지난해 11월 취임한 문상부(55) 사무총장이 있다. 문 총장은 중앙선관위 초대 조사과장과 조사국장을 역임한 이력처럼 불법부정선거 단속에 적극적으로 나선 '조사통'으로 선관위 사무차장 시절 전문인력으로 구성된 기동조사팀을 창설, 중대 선거범죄의 적발에 단속 역량을 집중시키는 등 우리나라의 선거문화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이번 공직선거법 개정 방향은 '돈은 묶고 말은 푼다'는 공직선거법 제정 취지에 걸맞게 선거운동의 자유를 전면적으로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는 점에서 국민들의 박수를 받고 있다.
"선관위가 올해로 창설 50주년을 맞이했는데 그에 걸맞게 선거제도도 선진국형으로 바꾸어야 한다. 선거운동 방법을 하나하나 시시콜콜하게 들어서 규제하는 나라는 OECD 국가 중에서는 일본과 우리나라밖에 없다. 선거운동 방법에 대한 규제를 다 풀어야 한다. 다만 선거 비용에 대한 규제는 현재대로 해야 한다."
선관위가 대전환을 하게 된 사건도 문 총장과 관계가 있다.
선거 투'개표 관리 역할에 머물던 선관위가 불법부정선거 감시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 전환점은 1989년 당시 중앙선거관리위원장에 이회창 전 대법관이 취임하면서부터다.
이 전 위원장은 취임사에서부터 "선거의 공정성은 사법기관의 독립과 언론의 자유와 더불어 민주주의의 기본요소"라며 "선거의 공정이 없다면 민주주의가 아니다"고 불법부정선거에 대한 강력한 단속과 규제를 선언했다는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선관위는 불법부정선거운동에 대한 조사권한이 없었다.
문 총장은 이 위원장이 취임한 직후 치러진 서울 영등포을 보궐선거에서 부정선거단속팀에 소속돼 당시 통일민주당 측의 호별 방문 불법선거운동 현장을 카메라로 촬영 적발했다가 야당 선거운동원들에게 신분증을 빼앗기고 'TK가 야당 선거운동을 방해한다'는 등의 협박을 당하는 위기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런 상황이 보고되자 이 위원장은 곧바로 당시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 헌법기관에 대한 중대한 도전행위"라고 항의했다는 것이다.
선관위는 이 사건 후 영등포을 재보선 후보자 전원을 고발조치하면서 투'개표 관리 위주에서 불법선거운동 단속 등 선거 과정 전반으로 선관위의 활동 방향을 확대하는 계기로 삼았다.
'약골'로 태어나 청소년 시절까지 병원 신세를 면치 못하던 그가 '마라톤 마니아'로 변신한 것이나 고졸 출신 7급 공무원으로 공직생활을 시작, 선관위 사무처의 최고위직인 사무총장(장관급)에 오른 것은 공직사회에서 새로운 '입지전'(立志傳)을 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공직선거법 등 정치관계법 개정의 주요 방향은 무엇인가.
"유권자와 후보자가 말이나 전화를 통한 선거운동을 사전선거운동 제한 없이 상시 허용하는 등 선거운동의 자유를 확대하자는 것이다. 인터넷에서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인터넷 실명제도 폐지하도록 하고 선거운동기간 중에도 자발적으로 제작한 표찰과 어깨띠 등을 자유롭게 선거운동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선거운동의 자유를 최대한 확대하도록 했다.
또한 매체와 횟수 규격 등 선거운동 기간 중의 선거운동 방법에 대한 복잡한 규제도 전면적으로 폐지하되 선거비용제한액에 대해서는 선거비용과 수입, 지출 내역을 인터넷에 실시간 공개토록 하는 등 선거비용에 대한 통제는 강화하도록 하겠다. 또한 기부행위와 매수행위 및 국민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규제하겠다.
정치 신인의 정치참여를 보장하기 위해 현재와 같은 예비후보자별 등록기간을 폐지, 후보자가 되려는 사람은 언제든지 예비후보자로 등록, 선거운동을 할 수 있게 했다."
-선관위가 공직선거법 개정에 나서는 배경은 무엇인가.
"선거 과정에서 선관위가 법을 엄격하게 집행하다 보니까 여야 정치권 모두 선관위에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그것은 선거법이 지나치게 규제 위주로 세세한 사항까지 규제를 해놨기 때문이다. 공직선거법의 대원칙은 '모든 것을 푼다. 법에 규정돼 있는 것만 규제하겠다'는 것인데 개별적으로 못하도록 한 것이 너무 많다.
이처럼 법에 정해져 있는 것을 선관위가 엄정하게 집행하니까 정치권이 선관위를 향해 권력기관화되었다거나 손 좀 봐야겠다고 하는 등의 경지에까지 온 것이다.
선관위는 올해로 창설 50주년이 됐다. 우리 선거제도도 선진국형으로 바뀌어야 한다. 선진민주국가 어느 나라에서도 하나하나 선거운동 방법을 적시, 규제하는 나라는 없다.
정치권에서 공직선거법 개정에 대해 걱정과 불만을 터뜨리고 있는데 선관위가 추진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은 과거 통행금지를 해제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통금을 해제할 때 얼마나 걱정이 많았느냐. 그러나 막상 통금을 해제했더니 아무런 문제가 없지 않았느냐."
-선거비용만 묶겠다는 것인데 선관위의 패러다임이 바뀐 이유는 무엇인가.
"국회에 가니까 보수적인 선관위가 왜 그렇게 획기적으로 바뀌게 되었는지 걱정하기도 하더라. 규제 위주는 후진국의 선거법이다. 아시아 아프리카의 후발 민주국가들에 맞는 법이다.
대부분의 선진민주국가에서는 선거비용 규제만 한다. 그런 쪽으로 가는 것이 옳다. 이런 선거운동은 된다, 안 된다는 것은 수준 이하다. 우리는 그런 시대를 졸업할 때가 됐다.
전 세계에서 제대로 민주주의를 하는 나라는 25개국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규제를 통한 공정선거로 우리나라는 20위 정도로 올라왔다. 더 이상은 한계다. 이제 우리나라의 경제력에 걸맞게 10위권으로 올라가야 한다.
영국에서 조사한 '민주주의 지수'를 보면 우리나라 선거의 공정성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우리가 낮은 부분은 선거참여다. 국민들의 선거참여가 너무 낮다. 또한 우리 정치문화도 문제다. 선거에 승복하지 않는 정치문화를 바꿔야 한다.
그러기 위해 제도를 선진국처럼 바꾸고 정치의식을 개혁해야 한다. 선거정치교육을 본격적으로 하겠다. 그것이 우리 선관위의 목표다."
-선관위 창설 50주년이 됐다.
"1948년도에 우리나라에서 첫 민주주의 선거가 치러졌다. 선관위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내무부의 한 부서에서 선관위를 구성해서 선거를 관리했다. 그런데 그때는 거기서 선거 부정을 저질렀다. 군사혁명 후 1963년 선관위가 헌법기관으로 만들어졌지만 권위주의 시대에는 소리를 내지 못했다. 언론도 마찬가지였지 않은가.
1987년 6'10 민주항쟁 이후 본격적인 민주화가 되면서 선관위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1989년 이회창 위원장 시절부터 선관위가 선거운동 관리에 직접 나서기 시작했다. 선거 관리를 책임진 국가기관으로서 불법선거운동에 대한 조사권한도 없이 나선 것이다. 선관위가 조사권을 갖게 된 것은 그로부터 10여 년 후인 1997년부터다.
2004년에는 후보자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유권자에게도 50배의 과태료를 물리는 과태료제도와 포상금제도가 도입됐다. 돈선거를 없애는 획기적인 계기였다.
지금 관권선거로 국정원 개입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과거 관권선거는 투'개표에 직접 관여했다. 이제 그런 관권선거는 사라졌고 선거폭력과 금품선거도 거의 사라졌다. 투'개표 부정도 불가능하다. 이제는 국민들의 정치의식 수준을 높여야 할 때다."
-최근 치러진 재보선에서 투표시간 연장이 정치적 이슈가 된 적이 있다.
"민주당에서 지난 대선 직전 비정규직의 투표참여를 높일 수 있도록 투표시간을 연장해달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선관위에서는 그 이전에 비정규직에 대해 설문조사를 했는데 그 사람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어디든지 가서 투표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었다. 투표시간 연장은 후순위로 밀렸다.
그래서 내놓은 것이 사전투표제다. 미국이나 일본에서도 사전투표를 하는데 우리나라는 거주하는 곳에서 투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나라보다 개선된 제도다.
투표시간을 연장하면 산술적으로 연장된 시간만큼 투표율이 올라가기는 한다. 그러나 OECD 국가 중에서 우리보다 긴 시간 동안 투표하는 나라는 몇 개국 되지 않는다. 투'개표의 정확성을 위해서라도 투표시간 연장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래서 선관위가 사전투표제를 채택했다. 앞으로 장소의 제한을 없애겠다. 정치권이 합의만 하면 전철역이나 등산로 입구, 백화점 등에서도 버스 한 대 갖다 놓으면 투표할 수 있다."
-선관위 서비스가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8월부터는 인터넷 모바일 투표도 실시한다. 투'개표에 돈이 들지 않아야 한다. KT와 MOU 체결을 했는데 모바일투표는 해킹과 매표, 대리투표의 우려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선은 시장과 군수 등이 정책결정을 하기에 앞서 주민의견을 들어보는 여론조사 수준의 주민투표 등에 활용하고자 한다.
아파트 동대표 등을 뽑는다든지 민간 영역의 선거에서는 이런 것을 활용할 수 있다.
각종 선거에 대한 국민 신뢰를 높이기 위해 투'개표 전 과정에 대해 선관위가 직접 인터넷 방송국을 운영, 실시간으로 공개하려고도 한다.
세계선거기관협의회(A-WEB)창설을 추진하고 사무처 유치에 나서고 있고 선거정치교육원 설립도 추진하고 있다."
서명수기자 didero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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