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안 주민 '원전 스트레스'…"끊임없는 비리, 불안 증후군 인정하라"

입력 2013-06-19 07:23:15

"누구도 책임 안지는 결말 자정능력 상실 사태 반복 심리, 정신적인 고

2011년 경주환경운동연합 회원 10여명이 경주 월성원전 앞바다에서
2011년 경주환경운동연합 회원 10여명이 경주 월성원전 앞바다에서 '월성1호기 노후 원전폐쇄'등을 요구하며 해상시위를 벌이고 있다. 매일신문 DB

신고리 2호기와 신월성 1호기에서 촉발된 부품 검증서 위조 건이 전 원전으로 확대되고 있다. 원자력안전위원회(이하 안전위)의 정밀 조사에서 검증서류가 위조된 부품이 납품된 원전 발전소는 모두 18곳에 달하는 등 원전 비리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특히 격납 건물 안에서 발생하는 수소를 제거하는 수소제거장치의 경우 시험성적서가 위조돼 한울원전 2'3'4'5'6호기와 월성원전 4호기, 고리원전 3'4호기, 한빛원전 2'3'5호기 등에 버젓이 설치된 것으로 파악돼 원전 당국의 안전 불감증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수소제거장치는 후쿠시마 원전사고에 따른 후속조치의 일환으로 설치됐으나 부품검증서 위조사실이 이번에 적발된 것이다.

안전위는 부품검증서 위조 부품들이 안전성에 미치는 영향이 적다는 이유로 해당 원전들의 가동을 중단시키지 않고 있지만, 원전 안전에 대한 국민의 불안감은 증폭되고 있다. 또 계속되는 원전 납품비리와 사고'사고 은폐로 원전소재 지역민들이 '원전 비리 피로감'을 호소하며 보상 근거 마련을 요구하고 나섰다.

◆원전 비리 커넥션

원전 비리가 반복되는 것은 한수원과 인증기관인 한국전력기술, 납품업체 간의 구조적인 유착 때문이다. 부품 시험결과를 조작한 혐의로 적발된 새한티이피의 경우 주요 임원들이 부품 검증을 승인해 주는 한전기술 출신인 것으로 검찰 조사에서 드러나고 있다. 한전기술과 업체 관계자들은 소위 '7인 회의'를 통해 부품 시험성적서를 위조한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또 원전 관리감독을 책임지고 있는 한수원의 퇴직자들도 원자력발전소 설계부터 건설'정비'품질 안전 검사 등과 관련된 업체들에까지 전방위로 재취업해 왔던 것으로 밝혀졌다. 한수원과 한국전력기술 퇴직자들이 협력업체에 재취업하는 것은 원전 업계의 오랜 관행으로 원전 비리의 고질적인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한국전력기술은 한국전력이 최대주주로 74.9%의 지분을 갖고 있으며, 한수원은 한국전력의 100% 자회사다.

이 때문에 한수원과 한국전력기술의 납품업체에 대한 검증시스템도 허술할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 새누리당 이진복 국회의원은 "한수원이 이미 작년에 시험성적서 위조 여부에 대해 조사를 실시했으나 부실 조사로 위조 사실을 밝혀내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번 위조사건이 터진 후 울진군의회 등 원전소재 시'군의회는 공동으로 발표한 성명에서 "원전 안전에 치명적인 비리가 계속 발생하는 이유는 '원자력 마피아'로 불리는 비리 커넥션이 존재하기 때문이다"며 관련자 엄중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물타기로 비판 여론 잠재우기에 급급한 한수원

이번 비리사건이 터지자 한수원과 전력기술 등 원전관련 공기업들은 다양한 비리방지 대책을 내놓았다. 우선 한수원과 전력기술은 1급 이상 간부들의 일괄사표 제출 방침을 밝혔다. 또 2급 이상 간부들에 대해선 재산등록 및 청렴 감사를 실시하는 한편, 전 직원의 협력사 비상장 주식 취득을 금지하고, 보유 중인 주식을 전량 매각하도록 했다는 것. 원전관련 공기업 직원들이 비리 등으로 해임되면 퇴직금을 최대 30% 삭감하고, 비위로 면직된 직원의 재취업을 금지하는 등 자체적인 제재를 강화키로 했다. 2급 이상 퇴직자는 협력사 재취업을 금지하고, 이를 어긴 협력사에 대해선 입찰 적격심사 때 감점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원전소재 지역여론의 반응은 싸늘하다. 작년 11월 품질보증서 위조사건이 터졌을 때도 한수원은 1급 이상 간부와 임원들이 일괄사표를 제출했지만 단 1명도 처리되지 않아 책임면피성 '요식행위'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매번 부품비리가 사실로 밝혀질 때마다 한수원은 자정과 쇄신을 얘기하며 비리 근절을 외쳤지만, 공수표로 돌아가 이번 비리방지 대책도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지역 인사들은 원전운영에 대한 독점적 지위 보장과 비밀주의에 따른 독단적 조직운영이 한수원을 '비리 백화점'으로 만든 원인인 만큼 정부가 특단의 대책을 마련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원전비리 피로감 호소하는 주민들

원전소재 시'군의회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원전 납품비리와 각종 원전 사건'사고 은폐로 주변 주민들이 '원전비리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며 보상 근거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관내 발전소에 시험성적서가 위조된 부품이 설치된 사실이 밝혀지는 바람에 정신적 고통과 심리적 불안 등으로 안전한 생활을 위협받고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한수원이 원전 인근 주민들의 '원전 비리 스트레스 증후군'을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보상 근거를 마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원전소재 시'군의회는 요구조건 관철을 위해 공동 대응과 노력하기로 했다.

또 한수원의 책임으로 원자로 가동이 중단되면 중단기간만큼의 미발전량에 대해서도 원전지원금을 정상적으로 보상할 수 있도록 발전소 주변지역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을 요구했다. 지금까지는 고장과 사고 등으로 원자로 가동이 중단되면 중단기간에 대해선 해당 지자체에 원전지원금이 지원되지 않았다. 그러나 원전소재 시'군의회는 "한수원의 책임으로 원자로 가동이 중단되면 당연히 원전지원금은 정상적으로 보상되어야 한다"면서 "이번 시험성적서 위조사건으로 가동이 중지된 원전의 미발전량분에 대한 원전지원금도 차질없이 지원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핵단체, 한국도 탈핵국가로 나서야

경주핵안전연대 등 원전소재 지역의 반핵단체 관계자들도 위조부품 사용에 대해 일제히 성명서 등을 내고 이참에 탈핵국가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 발 더 나아가 "이번의 원전 위조부품 사고로 23기 핵발전소 가운데 10기가 가동 중단에 들어가면 가동 원전이 56%밖에 되지 않는데, 역설적이지만 대한민국도 충분히 탈핵 국가로 진입할 수 있다"며 "원전 안전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어느 때보다 큰 만큼 정부와 한수원은 수명이 만료된 월성 1호기부터 즉각 폐쇄하는 등 탈핵 국가로 나서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이번 위조부품 발견이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자체 검증시스템에 의한 것이 아니라 외부 제보에 의해 알려졌는데, 이는 만일 외부 제보가 없었더라면 위조부품을 단 위험한 핵발전소가 계속 가동되었다는 뜻이 된다면서 관련자들의 엄중 처벌이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핵안전연대는 또 이번에 발각된 위조부품인 제어케이블은 원전에서 사고가 발생했을 때 원자로의 냉각시스템, 방사선 외부누출 격리시스템 등을 작동시키는 케이블이라고 하는데 케이블이 파손되면 유사시에 원자로와 그 주변을 통제하지 못하게 되고 결국 후쿠시마와 같은 대형 참사를 맞이하는 절망적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며 이것이 대한민국이 탈핵국가로 가야 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울진'강병서기자 kbs@msnet.co.kr 경주'이채수기자 csle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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