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의 窓] 사라진 거북이상

입력 2013-06-19 07:23:48

시대가 달라졌다고 공공기관에 있는 기념식수와 기념조형물을 옮기고 철거해도 좋은 것인가.

기념식수와 기념조형물은 뜻 깊은 일이나 훌륭한 인물을 오래도록 잊지 않기 위해 심거나 세우는 것이다. 기념식수에는 은은한 향기를 뿜어내는 향나무와 다산과 다복을 의미하는 과일나무를 이용하고, 기념조형물은 앞날의 번창과 장수를 기원하며 거북이, 두꺼비, 용 등을 사용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런 좋은 의미의 기념식수와 기념비를 두고 천년고도 경주가 구설에 휩싸여 있다. 경북관광공사가 1998년 9월 엑스포 개막식 때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방문을 예상해 보문단지 안 사옥 정면에 설치한 기념조형물인 거북이상을 4월 철거한 것이 발단이었다. 철거된 거북이상은 인근 육부촌앞 물레방아 시설의 조형물로 활용되고 있으며, 표지석은 보문단지 입구 묘목장 한켠으로 옮겨 놓았다. 묘목 사이에 나뒹굴고 있는 표지석에는'새천년의 미소, 김대중 대통령님, 보문호 고사분수 가동점화 기념식수 1998년 9월 11일'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문제는 조형물이 사라진 그 자리에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7년 사옥 앞에 기념식수를 했다가 말라 죽은 섬잣나무를 다시 구해와 심어 놓은 것이다.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민주당 경북도당 관계자들이 경북관광공사를 항의방문해 원상복구를 요구하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왜 14년을 관리해오던 조형물을 이 시기에 없앴는가 하는 점이다. 이런 배경에는 포항지역 국회의원과 포항시장 출마설이 끊임없이 나도는 공원식 관광공사사장(전 경북도 정무부지사)이 현 박근혜 정부를 의식해 이런 일을 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공사 측은 이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경북관광공사 관계자는 "1998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경주세계문화엑스포 개막식만 참석했을 뿐이며, 표지석에 기록한 대로 보문단지를 방문해 기념식수를 한 사실이 없기 때문에 사실과 다른 내용이 적힌 기념 조형물을 그대로 두는 것이 오히려 부적절하다는 판단에 따라 철거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또 공사 직원들과 수차례 회의를 거쳐 결정한 사안이며 정치적 의도는 전혀 없다고 해명했다.

공사 측의 해명을 믿고 싶지만 철거 시점이 너무 절묘하다. 지금까지 잘 관리해 오던 조형물을 박근혜 대통령 취임 두 달여 만에 철거한 점과 그 자리에 박정희 전 대통령의 식수목을 사용한 점 등은 정치적 의도가 없었다는 해명을 곧이곧대로 믿기 어려운 이유다.

공사 측은 민주당의 항의에 아직 답변을 내놓고 있지 않다. 그렇지만 이번 논란을 계기로 철거된 조형물을 다시 가져와 섬잣나무와 나란히 세워놓는 것도 올바른 해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공공기관이 정치적 논란에 휘말리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경주'이채수기자 csle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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