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 광장] 최선의 선택은 없다

입력 2013-06-18 11:13:28

며칠 전 한 학생이 상담을 위해 찾아왔다. "교수님. 제가 해외 인턴을 가야 할까요? 해외 인턴을 갔다가 혹시나 영어가 늘지 않아 취업이 안 되면 어떡하죠?" 그 학생이 내게서 듣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아니, 본인을 대신해서 선택을 해 주기를 바란 건 아니었을까?

프랑스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인생은 B(Birth'출생)와 D(Dead'죽음) 사이의 C(Choice'선택)이다"라고 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매 순간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이다. 좋은 선택이든 나쁜 선택이든 우리의 인생은 선택에 의해 결정된다. '오늘 뭐 먹지'라는 작은 선택에서부터 '어떤 대학, 어떤 직장에 갈까'라는 인생의 중차대한 문제까지 삶은 크고 작은 선택의 연속이다. 선택의 순간 앞에서 우리는 망설일 때가 많다. 나 자신을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선택이 가져오는 결과에 대한 책임을 두려워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때로는 누가 나대신 선택해 주길 간절히 바랄 때도 있다. 애꿎은 나뭇잎을 떼어 내기도 하고, 옆에 있는 친구와 가위바위보를 하기도 한다. 모든 선택에는 얻는 만큼 버려야 하는 무언가가 있고, 그 선택의 책임은 온전히 자신이 져야 한다. 기회비용을 잘 생각해서, 이상적으로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하겠지만 사람이란 게 이성적인 판단만으로 선택하는 경우는 잘 없는 것 같다.

두 가지의 선택지를 골라야 하는 순간이 오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영상이 하나 있다. 빠밤빠 빠밤빠 빠밤빠~ 익숙한 배경음악과 함께 흘러나오는 멘트 '그래. 결심했어!' 1990년대 인기리에 방송됐던 '이휘재의 인생극장'이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선택의 순간에 두 개의 선택이 가져오는 결과 모두를 보여준다. 가끔 살면서도 이렇게 미리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또는 선택의 순간에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매뉴얼 같은 게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한다. 인터넷에 떠도는 서울대 모 교수의 연구실에 걸려 있다는 인생 교훈이 생각난다. "갈까 말까 할 때는 가라. 살까 말까 할 때는 사지 마라. 말할까 말까 할 때는 말하지 마라. 줄까 말까 할 때는 줘라. 먹을까 말까 할 때는 먹지 마라."

요즘은 '대학 5학년'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재학 중인 많은 학생이 휴학을 선택한다. 영어 공부를 하기 위해서, 어학연수를 가기 위해서,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서 또는 스스로가 세운 어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온전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우리 때만 해도 모두 학교를 다니면서 해왔던 일들이다) 10년 가까이 대학에서 학생들을 만나 오면서 내가 발견한 진리는 이렇게 학교를 떠난 학생 중 목표를 달성하고 돌아오는 학생은 채 20%가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한 번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일에 대해서는 그 어떤 조언과 설득도 효과가 없다는 것이 내가 발견한 또 다른 진리이다. 아무런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막연하게 영어 공부를 위해 휴학을 하겠다고 찾아온 학생의 빤히 보이는 결과가 염려되는 마음에 두 시간이 넘게 조언과 설득을 한 적이 있다. 한참을 상담한 후에 그래도 꼭 휴학을 해야겠거든 하루만 더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내일 오라고 돌려보냈더니 10분 뒤 다시 찾아와 기어이 휴학을 해야겠다고 말하던 학생 몇 명을 연달아 접하고는 내 방법이 틀렸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행여 내 설득으로 휴학을 철회하게 되었대도 두고두고 '그때 휴학을 했었어야 해' 하며 가지 않은 길에 대해 미련을 갖고 아쉬워한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휴학 후의 시간에 최선을 다하라고 말해준다. 하고 싶은 건 꼭 해야 하는 것도, 그렇게 하고 나서 후회하는 것도 다 스스로의 몫인 것이다.

선택을 하는 순간 우리가 이 선택이 올바른 선택인지를 확인할 길은 없다. 그저 올바른 선택이라고 믿고 내가 선택한 일을 자신 있게 해나가야 한다. 일단 선택했다면 후회하지 말자. 선택의 순간보다 중요한 건 선택 그 이후이며, 그것을 책임이라고 한다.

매 순간 1분마다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고 했다. 최선의 선택은 없다. 단지 내가 한 선택을 최선으로 만드는 노력이 있을 뿐이다.

김미경/대구가톨릭대 교수·호텔경영학과 mkagnes@cu.ac.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