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소(上疏), 조선을 움직이다/홍서여 지음/bookin 펴냄
조선시대의 상소를 통해서 시대상황과 민심을 조명하고, 상소가 조선의 정치사회에 미친 영향을 확인하는 책 '상소, 조선을 움직이다'가 출간됐다. 이 책은 조선 태조부터 마지막 임금인 순종 때까지 주목받았던 상소를 중심으로 500년 조선역사를 읽어내려는 책이다.
세조 13년(1467년 1월 4일), 사헌부 대신이었던 양성지는 '소 도살을 엄히 다스려 달라'는 상소를 올렸다. '(상략)예전에는 백정이나 소를 잡았지만 지금은 양민들도 소를 잡고 있습니다. 전에는 잔치를 하기 위해 소를 훔쳐서 잡았으나 지금은 시장에서 버젓이 사서 잡고 있습니다. 백정이 잡는 게 아니라 양민이 잡고 있으며, 잔치를 위한 것도 아니고 마음대로 팔기 위해 잡고 있으며, 소를 훔쳐서 잡는 것에는 한계가 있지만 사서 잡는 것은 누구라도 계속 할 수가 있습니다. 만약 크게 형벌을 내리지 않는다면 이런 일이 그치지 않을 것이니, 이런 풍조가 없어질 때까지 만이라도 우선 군법을 적용하여 시행하소서.'
현대 우리나라가 소 밀도살을 금지하는 것은 '위생'과 '유통질서' 때문이다. 그러나 조선시대 소도살을 금지한 배경에는 농업이 있었다. 조선시대 농업은 소에 크게 의지했다. 소를 지키지 못하는 것은 농업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고, 농업을 지키지 못하는 것은 농민 즉, 백성을 곤궁에 빠트리는 행위였다. 농우를 지켜 농사를 지키자는 양성지의 상소는 조선의 산업근간이 농업임을 확인해주는 동시에, 고기가 턱없이 부족했던 시대상을 보여준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혁혁한 공을 세웠던 곽재우에 대해 경상우도 초유사(민심을 수습하고 의병을 독력하는 역할을 맡은 관리) 김성일은 상소를 올렸다.
'의령에 사는 목사 곽고월의 아들인 유생 곽재우는 젊어서 활쏘기와 말 타기를 훈련하였고, 집안이 본래 부유하였는데, 변란을 들은 뒤에는 그 재산을 털어 의병을 모집하니 수하에 장사들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중략)이런 위급한 때를 당하여 이런 사람을 잘 쓰면 도움이 없지 않을 것이기에, 즉시 동현으로 보내 돌격장으로 칭호하여 그로 하여금 왜적들을 공격하게 하였습니다. (중략) 신은 비록 그의 거친 것을 의심합니다마는 격려하고 권장하여 힘을 다하도록 하여 그의 하는 바를 살피겠습니다.'초유사 김성일의 이 상소는 비록 관직은 없지만 지역을 지키고 민심을 수습할 수 있는 인물인 곽재우를 독려해서 '나라를 지키는데 앞장서도록 하겠다'는 의사를 임금인 선조에게 알리고 있다.
상소는 중국 한나라 때 신하들이 황제의 면전에서는 소신껏 말할 수 없다고 해서 중요한 사안을 글로 써서 올렸던 것에서 유래했다. 조선시대 때는 사헌부와 사간원의 간관(諫官) 등이 임금에게 올바른 정치를 간하기 위해 올렸으나 점차 현직 관료, 지방 유생, 일반 백성, 억울한 죄수도 상소를 올렸다.
조선시대는 '상소의 시대'라고 불릴 만큼 상소가 많았다. 그러나 상소를 올린다고 다 잘 처리된 것은 아니었다. 임금은 상소를 정책에 반영하거나, 귀담아 들을 만한 것이 없다고 판단될 경우 본인에게 돌려주었다. 때때로 상소내용을 문제 삼아 귀양이나 사약 등 처벌을 내리기도 했다.
책은 모두 23편의 상소를 싣고 있으며, 상소전문과 함께 상소가 나오게 된 시대적 배경, 처리결과 등을 담고 있다. 지은이 홍서여는 한국의 역사를 사회적인 면에서 고찰하는 전공자들의 모임 '丹齋(단재) 역사사회학 포럼'을 이끌고 있으며, 전업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264쪽, 1만2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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