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회관 어떤 곳인다
대구문화예술회관은 1990년 공연장이 먼저 개장한 뒤 이듬해에 전시관, 그리고 1993년에는 대구예총 사무실과 시립예술단의 연습 장소 등이 있는 예련관이 건립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특히 1천 석이 넘는 공연장에 현대식 무대를 갖춰 당시로는 대형 공연이 가능한 시설로 각광받았다.
당초 접근성이 떨어지는데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도 힘든 곳에 위치해 반대의 목소리도 높았지만, 문예회관이 지역 문화예술 발전에 큰 역할을 한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개관 이전부터 있어 왔던 교향악단(1964년), 합창단, 무용단, 소년소녀합창단(이상 1981년), 국악단(1984년)의 활동이 더욱 활발해진 것은 물론 오페라단(1992년)과 극단(1998년) 창단의 모태가 됐고, 예총과 기간단체 사무실도 한자리에 모이면서 대구지역 문화계의 사랑방 역할까지도 담당하게 됐다.
건립 부지는 1982년에 결정됐다. 당시로는 외곽지인 성당동 두류공원으로 낙점되자 반대도 많았다. 대구의 허파 역할을 하는 공원 부지인데다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이유였다. 문예회관 개관 이전까지 대구의 문화 중심지 역할을 했던 시민회관은 도심인 중앙통에서 걸어 10분 거리에 있다. 반면 문예회관은 걸어서는 가기가 힘들고 대중교통을 이용해도 멀어 보였으니 '가기 힘든 곳'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건물은 대구예총 회장을 지낸 건축가 김인호가 설계했다. 다소 가분수(假分數)처럼 보이는 지붕도 화제였지만 건물 배치는 두고두고 논란이 됐다. 전시장과 사무실동이 전면에 배치되고 종합문화공간의 주축이라고 할 수 있는 공연장이 남쪽으로 치우친 까닭이었다. 당시 미술 쪽 인사들의 입김이 더 커 공연장보다는 전시관 위주로 설계했다는 얘기가 떠돌기도 했다.
한윤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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