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의 작가 안데르센이 지은 동화 '성냥팔이 소녀'는 가난한 소녀 시절을 보낸 어머니를 생각하며 쓴 작품이라고 한다. 빨갛게 타오르는 성냥 불꽃, 춥고 어두운 현실 속에서도 희망을 품고 죽어가는 가련한 소녀의 슬픈 이야기이다.
유럽의 '성냥팔이 소녀'와는 정서가 좀 다르지만 우리나라에는 '성냥공장 아가씨'의 애잔한 사연이 남아있다. 가난했던 시절 우리 누이들의 눈물겨운 아픔이 스며 있는 '인천의 성냥공장 아가씨'란 노래가 유행한 적이 있다.
'인천의 성냥공장, 성냥공장 아가씨, 하루에도 한 갑 두 갑, 일 년에 열두 갑, 치마 밑에 감추고서, 정문을 나설 때...' 1970,80년대에 군대생활을 했던 남성이라면 기억할만한 노래인데, 젊은 사병들의 이성에 대한 욕구를 빗댄 외설적인 노래여서 사뭇 민망한 부분도 없지 않다.
그래서 어느 시사평론가는 "성냥공장 아가씨의 노랫말은 가족의 생계를 어린 여성에게 떠넘긴 식민지 남성들의 왜소한 마조히즘(masochism)이 만들어낸 엉뚱한 사디즘(sadism)"이란 평가를 했나 보다.
그런데 많고 많은 도시와 지방을 놓아두고 왜 하필이면 인천의 성냥공장 아가씨일까. 그것은 역사적인 연원이 있다. 식민지 시절 일본인이 우리나라 최초의 성냥공장을 세운 곳이 인천이었고, 해방 후 한국인이 세운 최초의 성냥공장도 인천이었다.
인천은 항구도시라 노동력이 풍부했고, 압록강 일대의 목재를 신의주를 거쳐 인천항으로 반입하기 쉬웠기 때문이다. 또 서울이라는 큰 시장이 인접해 성냥산업이 번창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인천의 성냥공장은 가난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수많은 어린 여공들에게 소중한 일터였을 것이다. 인천의 성냥공장 아가씨가 탄생한 배경일 듯하다. 전기가 일상화되지 않고 라이터가 귀한 시절에야 성냥이야말로 각 가정마다 필수품이었고, 성냥산업도 불황이 없었다.
하지만 성냥은 이제 가파른 산업화의 세월을 따라 사라져간 추억 속의 정겨운 물건으로 남았다. 1960,70년대 전국에 산재했던 성냥공장은 대부분 문을 닫았고, 인천에도 지금은 성냥공장이 없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경북 의성에 자리한 성광성냥만이 그 명맥을 이어갈 뿐이다. 성광성냥이 최근 '경상북도 향토뿌리기업'으로 선정됐다. 전기가 나가고 가스가 끊기면 당장 필요한 게 성냥인데, 국내에 오직 하나 남은 국산 제1호 성냥 윤전기가 멈추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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