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속 달라진 소비문화] 알뜰 소비정신 정착

입력 2013-06-06 11:33:18

체면 대신 실속, 가전은 전시품 옷은 구제 매장서

불황이다! 위기의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서민들이 지갑을 꽁꽁 닫고 있다. 이미 IMF를 한 번 경험한 터다. 이번에는 마음가짐이 단단하다. 이 고비를 잘 극복해야 한다는 강한 다짐을 한다. 생활방식도 변했다. 중고서적 판매점 등 중고품 가게에 발길이 북적인다. 과소비 현상도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알뜰 정신'이 되살아나고 있다. 경제불황이 건전한 사회 풍속도를 그려내고 있다.

◆건전한 직업의식 정착

불황으로 달라진 생활상 속엔 '경제관념'이 숨어 있다. 가정경제가 어려움에 직면하면서 자연스럽게 동네마다 단체마다 직장마다 '아나바다 운동'에 나서는 등 '알뜰 소비'가 일상 속에 깊숙하게 스며들고 있다. 고물가에 경기 침체 우려까지 커지면서 고쳐 쓰고, 바꿔쓰는 절약형 소비가 자연스러워지고 있다. 가정마다 다양한 '알뜰 생활 실천'에 나서고 있다. 가전제품 구입도 시중 판매가보다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진열제품의 인기가 치솟고, 사용하던 옷을 고쳐주는 수선 집에 손님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한국인의 고질병이었던 '체면문화'도 급속하게 꼬리를 감추고 있다. 요즘은 "일할 곳 있으면, 용돈 벌이라도 된다면 무슨 일이든 상관없다"는 자세로 확 돌변했다. '3D 현상'은 어느새 슬그머니 사라졌다.

◆리폼 유행

서문시장 아진 상가 속 '수선 골목'. 재봉틀을 하나씩 배열한 수선 가게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이곳에 들어서면 옷을 고쳐 입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물론 새 옷을 체형에 맞게 줄이거나 유행에 맞게 디자인을 살짝 고치는 예도 있다. 하지만 요즘은 보관해 온 헌 옷을 버리지 않고 고쳐 입는 사례가 많다. 의상실 경영 등 40년의 옷 수선 경력을 지닌 미성양행 장상숙(58) 씨는 "예전엔 40대 이후의 중장년 알뜰족 손님이 대부분이었으나 요즘은 20, 30대 젊은 층도 점점 늘고 있다"고 밝힌다. 옆 가게 정광주(53) 씨도 "요즘은 입지 않고 장롱 속에 보관해 뒀던 옷을 다시 꺼내 유행에 맞게 줄이고, 새로운 디자인으로 바꿔달라는 요청이 많다"며 "기장 줄이기 등 간단한 것은 2천원부터 꽤 복잡한 수선도 1만원 정도면 O'K"라고 말한다. 아지아 옷 수선 황윤창(48) 씨는 밍크, 가죽, 양복 등 고급의류 리폼 전문가다. 양복점을 경영하는 등 34년의 경력자로 "수선도 패션의 일부분"이라고 강조한다. 이곳에는 잠시도 손을 놀리는 가게는 없다. 오전 9시부터 문을 닫는 오후 7시까지 잠시도 쉬지 않고 재봉틀을 돌려야 할 정도다.

◆구제시장 인기

"헌 옷? 아닙니다. 빈티지 패션? 맞습니다." 요즘 '구제 시장'을 찾는 발걸음이 늘고 있다. 젊은이들 사이에 인기 구제 사이트인 '빈테이스트(www.vintaste.com)' 이재형(28) 대표는 "구제상품을 선호하는 마니아들은 특별한 때를 가리지 않지만, 요즘처럼 경제상황이 좋지 않을 때엔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일을 가장 싼 가격에 귀한 제품을 소유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40대 이후의 중장년층까지 다양한 계층으로 번지고 있다"고 밝힌다. 대구는 '구제 천국'으로 불릴 만큼 전통적으로 구제 시장이 유명하다. 구제 의류를 다루는 매장만 해도 300여 곳이 넘는다. 동성로에 많이 몰려 있지만 전통시장에도 곳곳에 구제시장이 있다. 대표적인 곳은 교동 시장 인근에 150여 곳이 영업 중이다. 서문시장 근처, 관문시장 부근에도 150여 곳이 넘는 구제 시장이 형성돼 있다. 이 중 봉덕시장은 대구 구제 역사를 시작한 곳으로 불린다. 구제패션 1번지는 옛 자유극장 골목이다. 명품 구제는 주로 일본과 이탈리아 등 유럽 제품들이다. 짝(100kg) 단위로 들어오기 때문에 그 속에서 질 좋고 새것 같은 제품을 고르는 것은 '복불복'이다. 그게 구제제품의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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