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분남(경산시 진량읍)
아버지는 우리 집에 쌀이 떨어질 때쯤이면 어떻게 아셨는지 "방앗간에 쌀 찧어 놨으니 가져가거라"라며 엄마한테 시켜서 우리 집에 전화를 하신다.
"왔다갔다 기름 값이 더 들어요. 그냥 부쳐 주세요" 하며 가만히 앉아서 받아먹곤 하였다. 아버지가 보내 주신 쌀로 밥을 지으면 냄새부터 달랐다. 구수하고 달콤한 향이 온 집안에 퍼졌고 저절로 입안에 침이 가득 고이게 하여 갑작스레 심한 공복감을 느끼게 했었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뜨거운 밥을 후후 불어서 먹고 나면 이상하게 마음이 차분하니 순해지고 비로소 몸이 편안하고 거뜬해지는 것 같았다. 이렇게 좋은 밥맛은 별다른 반찬도 필요치 않아 김치 하나만 있으면 밥 한 그릇은 뚝딱이었다.
시댁 식구들과 모여 집에서 밥이라도 먹는 날이면 "형님네 집에 오면 밥맛이 최고예요" 하는 동서의 말에 너도나도 "한 그릇 더요"하며 내미는 밥그릇에 수북이 밥을 담으며 "친정아버지가 농사지은 쌀로 지은 밥이거든"하며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말은 하지만 내 어깨는 한없이 으쓱해지곤 하였다.
정을 떼려고 그러셨는지 병석에 계신 아버지는 오남매들 중에 유독 나만 알아보질 못하였다.
"아 부 지, 내가 누군지 알아요?"하면 아버지는 초점 없는 흐릿한 눈으로 낯선 사람 대하듯 나를 보며 "오다가다 만난 사람이지요" 하며 가슴을 털썩 내려앉게 하였다.
그런 아버지가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나를 보며 "쌀 찧어 놨다. 어서 차에 실어라" 하는 것이었다. 건강을 잃어 정신을 놓고도 어렵고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딸에 대한 아버지의 걱정과 염려는 깊게 남았던 모양이었다.
이제는 보고 싶어도 영영 만날 수 없는 우리 아버지. 생전에 잘 사는 모습 보여 드리지 못해 죄송스럽기만 하다. 5월을 보내며 유난히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난다.
이젠, 자리도 잡고, 잘 살아가고 있으니 못난 딸내미 걱정은 내려놓고 편히 쉬세요.
아부지, 정말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