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오사카 상인, 이세(伊勢) 상인, 오우미(近江) 상인을 일본 3대 상인 집단으로 꼽는다. 에도시대까지 일본의 경제 수도였던 오사카의 상인과 달리 오우미(현 시가 현)와 이세(현 미에 현'아이치 현) 상인은 뛰어난 사업 수완으로 일본 내 판매 유통을 좌지우지한 상단이다. 질투를 느낀 에도 사람들이 '오우미 도둑 이세 거지'(近江泥棒伊勢乞食)라며 멸시할 정도로 세력이 컸다. 특히 행상에 기반한 오우미 상인은 규율'도덕을 중시했는데 흉년이 들면 다리를 놓거나 건물을 짓는 등 공공사업에 적극 투자해 많은 일꾼들이 모이게 하고 그들을 상대로 장사하는 등 독특한 상술과 경영 철학으로 유명하다.
우리의 전경련 격인 게이단렌(經團連), 상공회의소와 더불어 일본을 대표하는 경제 3단체 중 '경제동우회'라는 단체가 있다. 1946년 발족한 이 단체는 기업인들이 국내외 경제사회 제반 문제에 대해 논의하고 그 견해를 사회에 제언해 온 단체다. 2003년 이 단체가 기업 백서를 내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을 이념으로 채택했다. 흔히 CSR을 미국의 기업 이념으로 여기지만 일본인들의 생각은 다르다. 와키모토 유이치는 저서 '거상들의 시대'에서 18세기 중반 오우미 거상인 나카무라 지헤에(中村治兵衛)가 강조한 경영 이념이자 가훈인 '산포요시'(三方よし)에서 그 뿌리를 찾고 있다. 장사는 세 당사자 즉 파는 사람, 사는 사람, 사회 모두에게 좋아야 한다는 것이다.
모두에게 좋다는 것은 '경세'(經世)라는 말과도 통한다. 경세는 세사를 잘 다스린다는 뜻이다. 장자의 '제물론'에 '춘추는 세상을 다스린 옛 군왕들의 뜻을 기록했는데 성인은 일을 설명하기만 했지 그 성격을 분별하지는 않았다'(春秋經世先王之志 聖人議而不辯)는 구절에서 유래했다. 경제는 경세제민(經世濟民), 경제제속(經世濟俗)의 줄임말이다. 세상을 잘 다스려 백성을 구제한다는 의미다. 나라의 으뜸은 안민(安民)이라는 말처럼 경세나 경제는 위정자나 벼슬아치에만 국한된 명제가 아니다.
재계가 4일 '한국 경제의 엑소더스가 우려되는 7가지 징후'라는 전국경제인연합회 보고서를 통해 국내 기업의 경영 환경이 급속히 나빠지고 있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증세 논의, 엔저 현상, 과도한 기업 규제, 어려워진 납품 단가 조정, 높은 생산 요소 비용, 경직된 노사 관계, 반기업 정서 등을 그 징후로 꼽고 한국 경제에서 기업이 이탈하면 저성장 구도가 심화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마디로 기업인 사기가 떨어져 한국 경제가 곤두박질칠 가능성이 높다는 경고다. 재계의 이런 불만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동안 기업이 할 만큼 했는데도 정치권과 여론이 반찬 먹은 괭이 잡도리하듯 기업을 윽박지르고 백안시하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기업들이 경세에 얼마나 부합했는지를 따져보면 사나운 민심만 탓할 일은 아니다.
'오리의 서 푼'이라는 일화다. 한 정승이 얕은 시내를 건너다 엽전 서 푼을 빠뜨렸다. 그는 인부들을 구해 서 푼을 찾도록 시켰는데 고작 서 푼을 찾는 데 그 100배인 석 냥을 썼다. 이를 본 누군가가 "서 푼 찾는데 석 냥을 들이다니 무슨 뜻입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 정승은 "서 푼을 찾지 않으면 땅에 묻히고 말지만 석 냥을 들이더라도 찾으면 인부들 품삯으로 돌아가니 된 일 아닌가"하고 답했다. 굳이 토를 달자면 대감은 서 푼을 찾았으니 됐고 인부들은 품삯을 받아서 좋고, 이 일이 세상 사람 모두에게 좋으면 된다는 것이다. 선조와 광해군, 인조 때 내리 영의정을 지낸 오리(梧里) 이원익(1547~1634)에 얽힌 이야기다.
맹자 '진심장'에 이런 구절이 있다. '백성을 안락하게 해주는 도리로 백성을 부리면 비록 힘들어도 원망하지 않고(以佚道使民 雖勞不怨) 백성을 살리려는 도리로 백성을 죽게 한다면 비록 죽더라도 원망하지 않는다'(以生道殺民 雖死不怨)고 했다. 그게 민심이다. 기업이 어렵다는 소리만 할 게 아니라 세상과 국민의 뜻을 얻지 못한 이유부터 따져봐야 한다.
기업을 지탱하는 원천은 이윤만이 아니다. '기업은 사회의 것'이라는 기업 철학과 세상을 다스리고 사람을 구제하는 안민의 정신이 더 큰 생명력이다. 경세를 외면하는 기업은 세상이 외면한다. 재계가 어려운 기업 환경을 탓하고 푸념하기보다 기업 정신을 분별하는 게 어떨까 싶다. 경제민주화가 그리 어려운 문제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