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고양시에서 열린 동물보호축제를 찾았다. 코엑스나 엑스코에서 하는 행사들을 상상했던 나에게 생각보다 조금 작아 보였지만, 이제 막 생겨난 축제이고, 반려동물들과 함께 공원을 산책하며 둘러볼 수 있다는 점에서 보면 적당한 크기의 행사였다. 축제장 안에는 여러 동물보호단체들의 부스부터 수의사협회에서 주최하는 무료 진료소, 그리고 반려동물 관련 물품과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부스 등 볼거리로 가득했다.
그중 가장 눈이 갔던 곳은 반려동물 입양과 관련한 부스였다. 유기되어, 혹은 길에서 태어나 생활하는 반려동물이 따뜻한 가족을 맞이하거나 보호받을 수 있도록 힘쓰는 사람들이 모인 그곳에서 딱한 사정의 동물들에 마음이 아프기도 했고 또 신경써 주는 사람들의 온정에 따뜻함을 느꼈다.
예전엔 길에서 살고 있는 동물들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당연히 길에서 마주치는 모든 강아지들은 '함께 사는 가족'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고양이의 경우에도 그냥 '밖에서 자유롭게 살고 있는 고양이'라고 생각했다. 마냥 동물을 좋아하는 나였기에 그저 마주치면 도망가기 바쁜 그들의 모습에서 왜 가까이 오질 않을까 하는 안타까움만 느꼈을 뿐이다.
그런데 어떤 계기로 인해서 나의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체셔를 만나기 전 친구와 함께 갔던 일본 여행에서였다. 지하철 역 앞 화단에 너무나도 느긋하게 늘어져 있는 고양이 녀석들을 발견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광경이었다. 종종 동네 고양이들과 마주친 적이 있었지만, 그 녀석들은 사람을 보면 도망치거나 숨어서 지켜보며 경계했다.
하지만 일본에서 만났던 녀석들은 달랐다. 마치 체셔가 우리 집에서 낮잠 자는 것처럼 너무나도 태연하게 사람이 지나가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고 일광욕을 하며 깊게 잠들어 있었다. 게다가 몇 발자국 걸음을 옮기고 보니 잠자는 고양이들 사이에 여기저기 고양이가 먹을 사료도 배치되어 있었다. 그땐 사람들이 길고양이들에게 사료를 주고, 고양이들은 사람을 경계하지 않는다는 것이 너무나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러한 모습은 일본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미얀마나 터키 등 세계 각지에서 길고양이들은 사람과 자연스레 섞여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비단 고양이뿐만 아니라 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터키에서 머물고 있는 지인에 따르면 가게 입구를 막고 잠든 큰 개에게 그 누구도 불평하거나 화내지 않고 오히려 잠이 깨지 않도록 조심조심 돌아서 비켜가더라는 얘기를 들었다. 물론 그곳에도 동물을 싫어하거나 마뜩잖아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들의 문화에서는 고양이를 배척하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길고양이들은 사는 환경도 열악할 뿐만 아니라 사람의 눈초리까지 받고 살아간다. 길고양이에게 필요한 것은 '먹을 것과 머물 곳'뿐인데, 먹을 것이 없어서 쓰레기통을 뒤지거나 시끄러운 목소리로 운다는 이유로 미움을 받곤 한다.
아마 내가 체셔와 앨리샤와 함께 살게 되지 않았다면, 길에서 사는 동물들이 얼마나 힘겹게 살아가는지 영영 모르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녀석들과 함께하면서 길고양이에게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한 번이라도 마주치면 신경 쓰이고 걱정되기 시작했다. 물론 내가 길고양이들을 위하여 할 수 있는 것은 소소하다. 하지만 내가,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적어도 그들이 이유 없이 생존권을 위협받으면서 살진 않도록 최소한의 배려를 해가며 더불어 살아가는 데 익숙해진다면 고양이와 행복하게 서로 공존하며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소망을 가져본다.
장희정(동물 애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