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사 집무지, 400여년 경상도 중심지 역할
대구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된 계기를 찾는다면 412년 전 경상감영(慶尙監營)이 대구에 설치된 것을 꼽을 수 있다. 최초의 경상감영은 원래 상주에 있었다. 조선 선조 34년(서기 1601년)에 대구 중구 포정동 지금의 자리로 경상감영을 옮겼다. 대구가 군사적으로나 정치'경제적으로 중요한 위치로 올라서는 전환점이 된 것. 대구에 경상감영이 있었다는 것은 대구가 그만한 값어치가 있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1601년부터 310년간 253명의 관찰사(감사)가 대구에서 근무를 한 덕분에 대구는 영남의 정치'경제'문화 중심지로 우뚝 서게 됐다.
◆하루에 천 냥이 나오는 자리
김종욱 문화사랑방 '허허재' 대표가 쓴 '잊혀지고 묻혀 버린 대구 이야기'에 따르면 경상감영 자리는 명나라 장수 두사충(杜師忠)의 집터였다. 풍수지리에 밝은 그는 대구의 정기는 비슬산에서 시작해 최정산~삼봉산~연귀산(지금의 적십자병원 일대)에 이르러 멈춘다고 봤다는 것. 아미산에서 천 걸음을 걸어 닿은 곳, 경상감영 자리에 자신의 집터를 잡았고, "이 터는 하루에 천 냥'이 나오는 명당자리라고 두 아들에게 알려줬다. 경상감영이 자리 잡은 것을 보면 두사충은 혜안(慧眼)을 가졌음이 분명하다.
팔도(八道)로 나눠 지방을 다스린 조선은 각 도에 지방 행정의 최고 책임자로 관찰사(觀察使)를 뒀다. 관찰사는 감사(監司)로도 불렀다. 감사가 있는 곳이 바로 감영이었다. 경상감영은 경상도를 다스리는 감사가 근무했던 곳이다.
동쪽에는 경상감영을 두고 서쪽에 대구관아와 객사를 뒀다. 주요 건물로는 감영과 중영을 비롯해 객사, 누각, 향청, 진영이 있었다. 정문인 관풍루(觀風樓)는 지금의 대구병무청 남쪽에 있었으며 대구읍성을 헐 때 달성토성으로 옮겼다. 선화당(宣化堂'대구시 유형문화재 제1호)은 관찰사의 집무소였고, 징청각(澄淸閣'대구시 유형문화재 제2호)은 처소였다.
◆대구 역사가 깃든 곳
경상감영은 경상도의 행정'사법'군사를 총괄했던 곳이기에 대구의 중심, 경상도의 중심이 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여기에 경제'문화적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경상감영 객사(客舍)는 손님을 접대하는 공간이었다. 또한 매월 초하루와 보름, 경축일에 대궐을 향해 절을 하며 임금을 가까이 모신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었다. 그만큼 중요한 건물로서 달성관(達城館)이라 불렸고, 관찰사의 주선으로 봄, 가을에 앞마당에서 약령시가 열리기도 했다. 경상감영이 경상도 경제발전의 주축 역할을 한 것. 1966년 경북도청이 산격동으로 이전할 때까지 경상감영 부근은 은행, 보험, 중개상, 양복점, 술집 같은 상권이 형성된 대구 최고의 정치'경제 중심지였다.
또한 조선시대 감영에서는 유학을 장려하고 지방문화를 창달하기 위해 도서를 간행했다. 그중 경상감영의 도서 간행이 가장 활발했다. 경상감영에서 편찬한 언해본인 '시경언해'는 한글의 변천과정을 엿볼 수 있어 국어학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고종 33년(1896년) 지방 행정을 13도제로 개편한 이후엔 경상감영은 경상북도의 중심지 역할을 이어갔다. 1910년 경상북도 청사로 개칭했으며 1966년 경북도청을 포정동에서 산격동으로 이전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경상북도 청사가 산격동으로 이전하고 난 후 1970년 중앙공원으로 조성했다가 1997년에 경상감영공원으로 이름을 바꿨다.
◆시민들의 휴식 공간
경상감영이 400여 년에 걸쳐 대구에 자리를 잡은 덕분에 대구는 경상도의 중심을 넘어 한강 이남에서 최고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도시가 됐다. 명실 공히 남부지방의 중심도시가 된 것이다. 정치는 물론 경제, 행정, 사법, 교육, 문화 등 모든 분야에 걸쳐 대구가 남부지방의 메카로 올라서는 데 경상감영이 이바지했다.
경상감영이 있던 곳에는 현재 공원이 들어섰다. 면적은 약 1만6천500㎡. 공원 안에는 선화당, 징청각이 남아 있고, 관찰사와 대구판관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세운 29기의 선정비가 있으며 보물 842호인 측우기와 말에서 내리라는 하마비(下馬碑)가 있다. 그 밖에 옛 건물의 멋을 살린 정문, 분수, 돌담, 자갈이 깔린 산책로, 조국통일을 기원하는 '통일의 종' 등이 있다.
또한 경상감영은 대구시민들은 물론 대구를 찾은 외지인들에게 볼거리도 제공하고 있다. 조선시대 경상감영이 있던 대구의 역사성을 일깨우고 시민들과 관광객에게 볼거리를 선사하기 위해 경상감사도임순력행차가 열리고 있는 것. 경상감사도임순력행차는 새로 부임한 경상감사가 백성들의 생활상을 둘러보기 위해 고을을 순회하던 것을 일컫는다. 이 행사는 2008년부터 동성로축제 개막일에 맞춰 매년 열리고 있다. 대구의 역사적 의의를 되살리고 색다른 볼거리 행사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대현기자 sky@ms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