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사만어] 추악한 납치의 역사

입력 2013-06-04 07:39:26

유명 정치인이 대낮에 납치극을 벌였다면 어떨까? 요즘 같으면 온 나라가 시끌벅적한 스캔들이 되지 않을까 싶다. 보통 납치극이라고 하면 범죄를 연상하게 되지만, 이 사례는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연애담이다. 40년도 넘은 옛날 얘기이고 그 정치인도 정계를 은퇴했으니 이제는 공개해도 되지 않을까 싶어 소개한다. 젊은 나이에 국회의원이 된 그분은 총각이었는데 그 지위에 걸맞은 부인감을 찾고 있었다. 서울에서 유명한 여자 대학교를 기웃거리고 있다가 안성맞춤인 여대생을 찾았다. 그 여대생은 '메이퀸'에 뽑힐 만큼 미모가 뛰어났고 성격도 좋았다. 그 정치인은 구애를 했다가 거절당하자 학교 앞에서 그 여대생을 거의 강제적으로 교외에 데려가 결국 결혼에 성공했다. 백주의 납치사건으로 그 정치인은 멋진 부인을 얻었고, 그 여대생도 유명 정치인의 아내가 됐으니 둘 다 그리 손해 본 장사는 아니었다. 훗날 정가에서는 그 부인을 가리켜 '남편은 대통령감이 아닐지 몰라도 부인은 퍼스트레이디감'이라고 평가할 정도였으니 그 정치인은 제대로 된 납치극을 벌인 셈이다. 이를 납치극이라고 보기는 그렇고, 과격하고 파격적인 구애라고 하는 게 옳다.

앞의 사례는 아름다운 결말을 맺었지만, 대부분 납치사건은 비극적인 결과를 낳았다. 흥미로운 것은 그리스'로마신화를 보면 '납치범죄 사례집'이라고 할 만큼 수많은 여성 납치극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최고의 신인 제우스부터 페니키아의 공주 에우로페에게 반해 황소로 변신해 납치범죄를 저지르는 모범을 보였고, 지하세계의 통치자 하데스가 대지의 여신의 딸 페르세포네를 납치해 아내로 삼았기에 대지의 여신이 슬픔에 젖어 지상세계가 척박해졌다는 얘기도 나온다. 트로이 왕자 파리스가 아름다운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를 납치하는 바람에 그리스와 트로이의 10년 전쟁이 벌어진 것은 누구나 아는 얘기다. 고대에는 인간이 이성보다는 힘을 앞세우는 '야만의 시대'였기에 납치와 폭력이 성행했다.

트로이 전쟁이 일어난 지 5천 년이 지났는데도, 인간의 야만성이 전혀 변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얼마 전 발생한 대구 여대생 납치 살해 사건은 인간이 되기를 포기한 한 남자가 벌인 끔찍한 범죄다. '나는 인간이 사악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놀란 적이 없다. 그러나 종종 그들이 부끄러워하지 않음에 대해 놀란다'는 조나단 스위프트의 말이 생각난다. 꿈도 채 피우지도 못하고 하늘나라로 간 그녀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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