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에서 깨어나는 21세기 실크로드] <제3부> 9.이란의 진주-아스파한

입력 2013-06-01 07:39:27

300m 교량 아래 황홀한 대화…압바스 1세가 빚어낸 도시

이란 고원에서 흘러내리는 자얀디 강의 중류에 자리 잡고 있는 이스파한은 '이란의 진주'라 불리는 역사도시이다. 실크로드 무역의 요충지였던 이 도시에 16세기 후반 들어 발전의 훈풍이 불어왔다. 이스파한의 영광은 1597년 압바스 1세가 이 땅을 수도로 정함으로써 시작됐다. 왕은 스스로 구상한 설계에 따라 도시계획을 추진, 이맘광장을 중심으로 왕궁과 사원, 시장, 교량 등 거대한 도시기반이 조성됐고 무역을 통한 경제는 번창했다. 최전성기에는 인구가 100만 명을 넘어 이 번영과 영화를 직접 목격한 실크로드 상인이나 외교사절들은 '이스파한은 지구의 절반'이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러한 발전의 가장 큰 공로자는 위대한 압바스 1세였다. 사파비조의 제5대 왕으로 즉위하자 곧바로 국내의 교통이나 통신망의 개선에 주력했다. 카라반 사라이 즉 실크로드 낙타대상의 숙소와 교량을 정비했다. 그가 얼마나 새로운 수도건설에 의욕적이었는가는 400여 년이 지난 오늘날 이 도시를 찾는 사람들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치밀한 계획에 따라 배치된 궁전, 사원, 정원, 교량의 아름다움은 당시 최고 기술의 집약으로 빚어낸 예술품이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도시에는 부와 인재가 몰려들어 당시 유럽제국에까지 이름이 알려진 대도시가 됐던 것이다.

이스파한에 도착한 것은 저녁 무렵이었다. 숙소의 창문으로 내려다보이는 석양은 아름다웠다. 특히 자얀디 강을 가로질러 놓여 있는 시오세 다리의 불빛은 사진촬영의 욕심을 일깨웠다. 저녁식사를 늦추더라도 감동이 사라지기 전에 현장을 잡아야겠다는 생각에 곧바로 달려갔다. 길이 약 300m의 이 다리는 적벽돌과 석재를 기본재료로 1602년에 완성하여 페르시아 건축의 백미를 보여주는 가장 아름다운 다리로 손꼽힌다. 시오세라는 뜻은 33이라는 의미인데 교량의 아치가 33개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차량은 다닐 수 없지만 언제나 많은 사람들의 왕래가 이어지고 있다. 건기가 계속되어 강물은 흐르지 않았으나 시민들은 다리 아래에서 차를 마시고 즉석음악회를 열기도 한다. 교각 아래 빈 공간에서 한 젊은이들이 기타와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흘러나오는 감미로운 음률이 다리를 비추는 불빛과 조화를 이루어 참 좋았다. 캔맥주라도 한잔 생각났지만 이 나라는 술을 팔지 않는 곳이다. 강바닥에 서서 문득 올려다본 밤하늘 보름달의 아름다움에 배고픔도 잊었다가 밤늦게야 숙소로 돌아왔다. 400년 전에도 여름밤이면 왕이 직접 다리 위에서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면서 주연을 베풀었다고 한다. 지금도 이스파한 시내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이 강에는 모두 11개의 크고 작은 다리가 놓여 있어 도시의 운치를 살리고 있다. 자얀디 강이라는 말은 '생명을 주는 강'이라는 뜻으로 이 강은 이스파한 시민들에게 말 그대로 생명과도 같다.

다음날 아침, 이맘광장을 찾았다. 이란 국내에는 총 13군데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이스파한의 이맘광장도 그중 하나이다. 압바스 1세는 1598년부터 정치, 경제 및 신앙의 모든 것이 집약된 최고의 광장으로 만들려고 작정하고 착공했다. 광장 자체가 거대한 미술품이며 열린 박물관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남북길이 512m, 동서길이 163m의 긴 네모꼴 광장이다. 회랑으로 둘러 싸인 공간에서는 외교사절과의 회견이나 열병식이 열렸고 때로는 폴로 즉 격구경기가 열리기도 했다. 오랜 역사를 가진 격구는 실크로드를 타고 신라에도 전해져 그 흔적이 남아있는 경기이다. 광장 서쪽 알리카프 궁전의 6층 테라스에서 왕은 폴로경기를 관람했다고 한다. 그 자리에 지금은 젊은이들이 간이운동장 삼아 축구게임을 즐기고 있다. 맞은편 동쪽에는 노란색 돔을 가진 로트폴라 사원이 보인다. 왕족들의 전용인 이 사원은 벽면을 다양한 채색타일로 장식하여 400년 전의 찬란함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놀랍다. 당시에는 일반적으로 청색 계통의 타일이 사용되는데 특이하게 노란색을 배합하여 따뜻한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다. 그 이유는 여성 모스크로도 불리는 것처럼 왕의 여인들이 사용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광장의 북쪽 회랑은 전통상품을 파는 천여 개의 점포로 조성되어 있다. 이스파한은 예로부터 독특한 수공예품으로 유명하다. 그중에는 상아를 비롯한 정교한 금속공예 등 수많은 종류의 토산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길게 늘어선 상점가는 오랜 역사를 가졌으나 옛 모습 그대로 활기가 넘친다. 토산품에 관심을 가지고 둘러보니 상인들은 친절하고 물건값도 잘 깎아 준다. 무엇보다 기본물가가 낮으니 우리 돈으로 환산해보면 가격도 참 착하게 느껴진다.

글'사진 박순국(전 매일신문 편집위원) sijen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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