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백일장] 수필-새벽을 여는 생명력

입력 2013-05-30 14:00:21

조숙자(대구 달성군 옥포면)

산새울음소리가 새벽을 연다. 자연의 기운은 모든 생명력에 싹을 움트게 했고 봄비가 내리는 산과 들에는 꽃들이 만발하다.

아파트 뒤 놀이터 벽을 타고 상추, 시금치, 쑥갓, 방울토마토, 마늘, 감자 등이 시커먼 네모난 돌 밭두렁 안에 빼곡히 올라오고 있다. 아직 돌 밭두렁조차 만들지 않은 곳에선 쑥, 민들레, 고들빼기 등과 이름 모를 그저 그런 잡초들만 무성하다.

풀이 무서워 덮은 검정비닐 위로 까치가 날고 그저 박아놓은 나뭇가지에만 의지해서 올라오는 더덕넝쿨이 향수처럼 코끝을 자극한다.

돌을 가려내고 나름대로 정리해 제멋대로 네모, 세모, 둥글고, 심지어 소시지 닮은 밭도 있다. 돌 밭두렁에는 노란 냉이 꽃과 아욱이 보이고 시금치는 쑥쑥 자라서 꽃이 피었는데 아마도 곧 씨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아직은 희뿌연 안개 속에서 괭이 소리에 맞추어서 허리를 굽혔다 폈다를 반복하는 노부부의 모습이 보인다. 아마도 돌을 골라내는 작업을 하나보다. 이번엔 어떤 모양의 밭이 만들어질지 궁금해진다. 반짝이는 아침 햇살에 희끗희끗한 머리 사이로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아까시향기로 훔쳐내고 있음이 보인다.

산 밑을 길게 돌아설 무렵 뾰족뾰족 눈 튼 돌나물이 보인다. 이맘때쯤 친정엄마가 보내주신 돌나물 물김치에 고추장과 참기름을 넣고 쓱쓱 비벼먹는 그 맛은 먹어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채소는 주인의 발걸음 소리를 먹고 산다고 했다. 빠른 걸음에 숨이 차다. 잠깐 숨을 고르고 목을 축인다.

나무 사이에 '이 지역은 본리지구 토지구획정리조합에서 지상권을 가지고 있으므로 조합의 동의 없이 무단으로 경작을 하는 자는 형사고발 조치합니다'라는 현수막이 휘날린다. 오늘도 회색빛 아파트건물 위로 아침은 서서히 막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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