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창] 예방적 유방 절제술

입력 2013-05-27 07:28:46

오래전에 한 친구가 불쑥 황당한 질문을 했다. "자네 전공이 위암이라니까 말인데, 위암을 '가장 확실하게' 예방하는 방법은 뭔가?" 원래 장난기가 많은 친구라 나도 익살스럽게 대답했다. "확실하게 예방? 그러면 우리나라에서 지금까지 가장 어린 위암 환자가 다섯 살이었으니 네 살쯤에 위를 모두 없애버리면 되겠네?" 그렇게 농담으로 받아넘겼지만 내용이 하도 썰렁해서 스스로 머쓱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그런 일이 현실로 나타났다. 미국 배우 앤젤리나 졸리가 유방암을 방지하기 위해 최근 양쪽 유방 절제수술을 받았고 조만간 난소암의 위험 때문에 난소 절제 수술도 받을 예정이란다. 그녀는 어머니가 56세에 유방암과 난소암으로 세상을 떠난 뒤 어머니로부터 유방암 발병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BRCA1 변이유전자를 물려받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단다. 그래서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87%, 난소암에 걸릴 확률은 50%에 달했는데 이번 수술로 일단 유방암에 걸릴 확률은 5%로 낮아졌다고 한다.

이 일은 바로 '앤젤리나 효과'로 불리면서 세상을 뒤흔들고 있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도 커버스토리로 다루며 '졸리가 지진과 같은 충격을 던졌다'고 표현했다. 이러한 유전성 암의 예방적 수술 때문에 병원마다 유전자 변이 검사에 대한 질문이 넘치고 있으며 이미 발 빠르게 움직이는 나라도 있다. 영국은 일부 암 환자와 가족을 대상으로 암과 연관성 있는 97개 유전자를 조사하는 프로그램을 실시한 뒤 성공적 결과가 나오면 순차적으로 전국 모든 암환자들에게 확대할 계획이란다.

유명한 미녀 배우가 멀쩡한 양쪽 유방을 들어내니 세계적인 뉴스가 됐지만 남자들이 건강한 전립선을 제거해 버리는 일들도 의학계에는 보고되고 있다. 전립선암과 관련된 BRCA2 유전자 변이 판정을 받은 남자들이 그 주인공들인데 이렇게 발병도 하기 전에 진단된 '환자 아닌 환자'들이 발생하고 있어 이에 대한 의학계의 논란도 만만치는 않다.

점쟁이도 아니고 어떻게 이런 일들이 가능해졌을까? 바로 유전자 연구의 괄목할 만한 발전 때문이다. 2001년 2월 12일 드디어 인간은 자신들의 유전자 지도를 완성했다. 인류는 처음으로 이른바 '자신들이 만들어지게 된 설계도'를 가진 것이다. 그때 사람들은 비로소 신의 영역에 들어서는 패스워드를 풀었다고 흥분했지만 사실은 문틈으로 겨우 엿보는 정도도 되지 않는다.

예방적 절제처럼 겁나서 미리 잘라 버리는 무식한(?) 방법 대신 언젠가 유전자 이상을 우리가 바로잡을 수 있을 때 수많은 난치병도 함께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문득 성경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하나님이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전도서 7장 13절) 그 책무가 우리에게 주어졌다.

정호영 경북대병원 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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