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정치 이슈] 갑과 을 '프레임 경쟁'

입력 2013-05-25 07:07:21

민주 '乙 지키기'에 새누리 '甲·乙 상생' 맞불

프레임(frame)은 창(窓)이다. 정치권은 어떤 사안이 이슈화할 때 그것을 자신의 의도대로 국민이 해석하도록 프레임을 짠다. 대북(對北) 지원을 '원조'로 보게 하느냐, '퍼주기'로 보게 하느냐의 차이로 볼 수 있다.

지금 정치권은 우리 사회의 갑(甲)과 을(乙)을 두고 프레임 경쟁에 나서고 있다. 대기업 본사의 대리점 횡포 문제가 도화선이 됐다. 민주당은 '을을 위한 정당'을, 새누리당은 '갑과 을의 상생(相生)'으로 대국민 설득에 나섰다.

◆민주, '약자'를 내세우다.

민주당의 '을을 위한 정당'은 말 그대로 을(乙)에 강조점을 둔다. 갑의 횡포를 막고, 을의 정당한 권리를 옹호하겠다는 것이다.

이달 22일에는 서울 영등포 민주당사에서 '을을 지키기 위한 신문고' 현판식이 열었고, 그 자리에서 김한길 당대표는 "을의 편에 서서 을의 억울함에 귀 기울이고 풀어가는 것이 민주당의 할 일"이라고 역설했다. 조폭 우유로 회자한 남양유업 사태와, 밀어내기 논란을 촉발한 배상면주가의 예를 들면서 '을을 위한 만민 공청회'도 약속했다.

앞서 21일 민주당 민병두 의원은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권, 고발요청권, 조정권을 17개 광역지자체에 확대 및 분권화하는 법안을 추진한다며 "갑(甲)친화적인 법체계를 을(乙)친화적인 법체계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당은 이 '갑을관계 3법'을 '을의 권리를 지켜주고자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법'으로 명명해 '을지로 법'으로 부르기로 했다. 이 법은 민주당 '을 지키기 경제민주화추진위원회' 전원 공동 발의로 추진할 예정이다.

전병헌 원내대표는 아예 오는 6월 임시국회를 '을의 눈물을 닦는 국회'로 규정하고 있다. 그는 "가맹점과 대리점에 대한 본사의 횡포를 막는 프랜차이즈법과 남양유업 방지법 등을 반드시 처리하겠다"는 결의를 다졌다.

일각에서는 민주당이 '을의 정당'을 표명한 것을 두고 새 정부 들어 다소 후퇴하고 있는 '경제민주화'를 재선점하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하고 있다.

또 민주당은 앞으로의 민생 행보 속에서도 '을(乙) 프레임'을 지속적으로 내세울 것으로 보인다. 당 지도부가 밀양 송전탑 공사 강행 현장을 직접 찾아가 주민 편에 선 것이나, 민주당 장병완 정책위의장이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서 어려움 겪는 을을 위한 생활정책과제를 발굴하겠다"고 밝힌 것에서 이를 읽을 수 있다.

◆새누리, 상생으로 반격

민주당에 선제권을 놓친 새누리당은 갑과 을 모두 살리는 '갑을 상생'으로 반격에 나섰다. 을을 위한 정당임을 공언한 민주당을 '갑을 편 가르기'로 비판하면서 역공에 들어간 모습이다.

황우여 대표는 22일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6월 국회에선 갑을 상생 도모 법안을 우선 처리하겠다"밝혔다. 또 "한쪽이 힘의 논리를 악용해 횡포를 부리면 갑을 모두 공멸을 면치 못할 것"이라며 '상생'을 강조한 뒤 "갑을 논란은 경제민주화의 범위이고, 경제민주화는 당의 총선'대선 주요 공약인 만큼 당이 만전을 기해 달라"고 당부했다.

김기현 정책위의장도 이날 "을만 살리는 게 아니라 갑과 을이 병존하는 상생 관계로 가야 바람직하다"는 당론을 밝혔다.

갑을 관계 해소도 중요하지만 자칫 지나친 갑에 대한 규제 탓에 경제에 찬물을 끼얹어서는 국가 경제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를 위해 당 경제민주화실천모임은 갑의 횡포에 대해 피해액의 10배를 배상하도록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집단소송제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 당 경제민주화실천모임 대표인 남경필 의원은 "민주당이 추진하는 '을 살리기' 관련 법안들은 사실 단편적이고 현상적 문제만 해결하려는 법안"이라며 "여당인 우리가 이 문제 해결을 주도하기 위해 구조적인 문제를 파헤치고 입체적으로 다루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선 새누리당의 이날 발언을 두고 민주당이 주도하고 있는 '갑을 프레임'에서 벗어나 '성장'과 '상생'이라는 이슈를 던져 정국의 주도권을 되찾아 오겠다는 전략으로 읽고 있다.

한편 정부도 새누리당과 보조를 맞추고 있다. 노대래 공정거래위원장은 22일 민주당 업무 보고에서 김한길 대표가 "을을 위한 공정위가 되어 달라"고 요청하자 "갑도 위하고 을도 위하는 중립성 회복이 중요하다"고 답했다.

정욱진기자 penchok@msnet.co.kr

서상현기자 subo801@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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