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바나나

입력 2013-05-20 11:10:09

일본 하이쿠(俳句)의 명인 마쓰오 바쇼(松尾芭蕉)의 본명은 무네후사(宗房)다. 바쇼는 필명이자 호다. 흔히 파초에서 따온 것으로 알고 있으나 실은 파초와 비슷한 열대식물인 바나나에서 착안했다. 정원에 바나나 나무를 심어 시적 영감을 얻으면서 필명으로 삼은 것이다. 바나나 잎으로 만든 초가에서 살았으니 바나나는 바쇼의 삶과 문학의 상징인 셈이다.

요시모토 마이코는 국내에도 많은 독자를 가진 일본 여성 소설가다. 1988년 데뷔 이후 무라카미 하루키와 일본 독서 시장을 양분하며 '바나나 신드롬'이라는 유행어까지 낳을 만큼 세계적으로 큰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요시모토 바나나. 그의 필명도 '바쇼'에서 착안했다.

바나나는 서아프리카의 감비아, 세네갈 등지의 울로프(wolof)족이 쓰던 '바나아나'(Banaana)에서 유래했다. 동남아가 원산지로 16세기 포르투갈 식민 개척자들이 대서양 제도와 브라질, 서아프리카에 농장을 세우고 대량 재배를 시작했으나 19세기까지도 바나나는 생소한 열대 과일이었다. 1880년대 미국에서 대중화되기 시작했고 빅토리아시대(1830~1901) 말엽까지도 이를 접해본 유럽인은 많지 않았다. 줄 베른의 '80일간의 세계 일주'(1872)에서 독자 이해를 돕기 위해 바나나를 상세히 묘사할 정도였다.

바나나가 감귤을 제치고 국내 과일 1위 자리를 굳히고 있다고 한다. 10년간 과일 매출을 따져보니 바나나가 2011년 처음 1위를 차지한 이후 대표 과일로 자리매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바나나 인기에 대해 고령화와 깊은 관계가 있다는 분석이다. 소화가 잘 되고 영양소도 풍부해 뇌졸중 예방에 좋은 식품으로 알려진 때문이다.

세계 주요 식량 수확량을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면 바나나는 쌀과 밀, 옥수수 다음이다. 단순히 과일이 아니라 식량자원인 것이다. 현재 식용 바나나는 '캐번디시' 단 한 품종에 불과하다. 나머지 수백 종의 야생 바나나들은 딱딱한 씨 때문에 먹기 힘들다. 식용 바나나는 씨 없이 뿌리를 옮겨 심은 탓에 유전적 다양성이 부족해 환경 변화에 취약한 것이 단점. 1950년대까지 주종이었던 '그로 미셀'이 '바나나의 암'으로 불리는 파나마병으로 말라죽으면서 병에 강한 캐번디시로 대체된 것이 좋은 예다. 이마저도 언제 멸종될지 모른다니 인류에게 큰 선물인 바나나를 지키기 위한 노력이 새삼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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