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에서 깨어나는 21세기 실크로드] <제3부> 7.페르시아 정원

입력 2013-05-18 08:00:00

사막에 꽃피운 '페르시아식 안압지'

페르시아 정원을 둘러본다. 작은 물길을 따라 흐르는 물소리에 기분이 상쾌하다. 뿜어져 나오는 분수의 힘찬 물줄기는 보는 이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한다. 어디선가 바람을 타고 꽃향기도 흘러와 고요한 수면 위로 퍼진다. 페르시아 정원의 매력은 많은 시인들에 의해 아름다운 시어로 찬사되고 있다. 척박한 사막의 험한 날씨 속에 동서를 왕래했던 실크로드 대상들은 진정한 휴식처를 원했다. 산속에 저장된 눈 녹은 물이 용솟음쳐 사계를 통해 변함없이 흘러드는 파라다이스 즉 오아시스를 만들었다. 페르시아 정원은 중앙에 사각형의 연못을 두고 물길이 그 주위로 흐른다. 이 십자형의 수로가 땅을 네 부분으로 가르는 디자인이다. 기원전 6세기 키루스 대왕 시대에 유래된 디자인 원칙 즉 4분법 정원이다. 지금도 파사르 가데 유적지에서 그 흔적을 볼 수 있다. 페르시아 정원은 하늘, 땅, 물, 식물 등 조로아스터교의 4요소를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왕들은 계절별로 정원을 가지고 대신이나 부호들도 별도의 정원을 소유할 수 있었다. 건조한 기후에 대응하여 일반 가정의 주택에는 거실 가운데에 조그만 수조와 분수를 설치해 두고 있다. 그곳은 손님을 위한 접대공간으로 사용된다. 시중의 식당들도 상당한 면적의 실내 정원을 갖추어야 할 정도로 일반화되어 있다.

201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선정위원회는 이란 국내에 있는 9개의 대표적인 정원을 '페르시아식 정원'으로 묶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했다. 페르시아 정원은 황량한 사막에서 한 발짝만 안으로 들어가면 정반대되는 지상 낙원과 연결된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정교한 물 관리 체계, 적절한 식물의 선택, 화단을 배치한 위치 잡기 등의 조치를 했다. 페르시아 정원은 자연요소와 인공 요소들을 결합하여 철학과 종교적 이상을 표현하는 독특한 예술적 성취를 이루어 냈다. 이러한 정원의 사상은 시, 음악, 카펫 디자인에도 반영되었다. 기하학적 배치와 건축의 대칭, 그리고 복잡한 물 관리 체계는 세계의 정원들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란지역의 실크로드 답사를 진행하면서 페르시아 정원 여러 곳을 방문했다. 이스파한에 도착해 가장 먼저 체헬 소툰 영빈관을 찾았다. 수면에 반영된 모양이 아름다워 정원박물관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이 화려한 궁전은 1647년 압바스 2세에 의해 만들어졌다. '체헬 소툰'이라는 말은 40개의 기둥이라는 의미이다. 실제로 기둥은 20개이나 정면 연못에 기둥의 모습이 꼭 같이 반영되어 비치면 합해서 40개로 보이므로 그렇게 불렀다. 궁전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높은 천장과 벽면에 당시 궁정의 일상생활을 묘사한 대형 세밀화가 그려져 있다. 이 건물과 정원의 주인인 왕이 손님을 맞아 접대하는 파티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개방형 건물의 중앙에는 크고 둥근 공간이 형성되고 그 아래에 화려한 카펫이 깔리며 음악이 연주되면서 아름다운 식기에 맛있는 음식이 차려진 향연이 펼쳐졌을 것이다.

카샨시 교외에 있는 핀 정원은 압바스 1세가 조성을 지시했고 오래도록 애용했다. 웅장한 정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큰 연못과 궁이 보이고 삼나무들이 도열하듯 서 있다. 물이 흐르는 작은 수로가 그 주위를 감돌도록 되어 있는 전형적인 페르시아식 정원이다. 사계절 철 따라 피어나는 다양한 꽃들과 물소리가 마음을 정화시키는 듯하다. 도심에 있으면서도 도시의 번잡함을 잊게 하는 치유의 오아시스이다. 야즈드시에서는 도심 광장의 조경을 분수를 활용해서 정원 형태로 가꾸어 놓았다. 흐르는 물이 연못과 분수대를 통해 멋진 풍경이 되어 나타난다. 반사되는 물빛이 눈부시다. 시라즈에 있는 카림칸 잔드성의 중앙광장은 긴 연못으로 장식된 것이 특징이다. 푸른 하늘과 구름이 물 위에 나타나는 반영의 영상이 아름답다. 모든 정원에는 물 관련 시설이 포함되어 있다. 사막에서의 목마름을 해소하기 위함일까. 정원과 수변공간의 연관은 풍부한 물 자원을 지닌 신라시대의 정원에서도 보인다. 안압지와 포석정도 물가에서 시를 짓고 즐기던 특수한 정원의 한 예인 것이다. 물은 눈에 비친 자연과 우주 질서의 반영이다.

궁전과 정원은 왕가의 강력한 위력을 상징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페르시아 정원은 인간의 창조성이 만들어낸 걸작이다. 정교한 물 관리 체계, 적절한 식물의 선택 등 계속되는 관리 보수가 있어야 정원의 아름다움은 유지될 수 있다. 정원에는 시각적'청각적으로 아름다움에 기여하는 '여러 형태의 예술품'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정원의 요소들은 보이지 않는 각 분야에서 정성을 기울여 온 수많은 삶들이 있음으로 해서 긴 세월 유지되고 있다. 정원을 이용하고 향유하는 왕이나 고관대작이 아닌 계절을 잊고 밤낮없이 땀 흘리며 가꾸어 온 무명의 그들을 생각한다.

글'사진: 박순국(전 매일신문 편집위원) sijen2@naver.com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