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벌 사회가 요동치고 있다. 4년제 대학을 나와도 취업이 안 돼 전문대나 직업학교로 재취업하는 일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그중엔 석'박사도 포함돼 있다. 이미 전문대 인기학과는 지역의 4년제 대학 일부 학과의 입학성적보다 커트라인이 높다. 고교도 마찬가지. 일반계고를 다니다 직업교육을 받기 위해 진로를 바꾸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 4년제 대학이, 일반계고가 반드시 더 나은 진로를 보장하지 못하는 시대다. 학벌의 틀을 깨고 과감하게 학력과 진로를 바꾼 이들을 만나봤다.
◆일반계고→직업과정, '진로 유턴'=이달 10일 오전 대구과학대 외식조리제빵전공 실습실. 30여 명의 남녀 학생들이 요리사 차림으로 마들렌을 굽느라 한창이었다. 이들은 직업교육과정을 신청해 올해 3월부터 제과제빵 교육을 받고 있는 대구의 일반계고 3학년생들. 여러 학교에서 모인 이들은 2주에 하루만 원적 학교에 출석하는 것을 빼고는 위탁교육장에서 월~금요일, 오전 9시~오후 5시 실습과 이론 교육을 받는다. 교육비는 모두 무료.
고3 최보윤(18) 양은 고교 2학년 때 사격 선수에서 조리사로 진로를 바꿨다. 평소 요리하기를 좋아했던 최 양은 진로를 바꾸기로 결심한 뒤 작년 한 해 동안 한식'양식'중식'일식조리기능사를 모조리 땄고, 올해는 제과제빵에 도전했다. 지난 두 달 동안 머핀, 케이크, 브라우니 굽는 법을 열심히 배웠고, 이제 제과제빵기능사 실기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조리사 진로가 의외로 넓어요. 취업도 할 수 있고, 창업도 할 수 있어요. 우선은 전문대 조리학과로 진학할 생각입니다."
고3 윤정민(18) 군은 이곳에 온 지 한 달 만에 한식조리기능사 필기시험을 통과했다. 윤 군은 "나물 생채와 찜 요리를 배우고 있는데 친구들끼리 서로 음식 맛을 비교해보며 많이 배우고 있다. 학교 수업보다 훨씬 재미있어 좋다"고 말했다.
이곳 지도를 맡고 있는 대구과학대 김정미 교수는 "새로운 목표를 찾아온 아이들이다. 낙오자라면 이곳에 오지도 않았을 것"이라며 격려했다.
역시 일반계고 3학년들이 다니는 대구산업학교(경북기계공고 부설)의 경우 2008년 1.6%였던 취업률이 작년 18.8%로 매년 늘고 있다. 김규욱 대구산업학교장은 "기계, 미용피부, 제과제빵, 조리 등 전체 8개 학과 학생들 중 96%가 자격증을 취득했다(2012년 기준)"며 "학생들의 배움에 대한 열의가 매우 높다"고 말했다. 대구시교육청은 전문대학과의 협의를 통해 내년도 일반고 직업교육과정의 참가인원과 과목을 확대할 계획이다.
◆4년제 대학→전문대, '학력 유턴'=올해 영남이공대 자동차계열에 입학한 박대용(26) 씨는 지역 4년제 대학 호텔관광학과를 졸업하고 학력 유턴을 한 경우다. "4년제 대학을 졸업해 보니 취업문도 좁고, 아무래도 전문직이 각광을 받더군요. 원래 자동차에 관심이 많아 전문대 자동차계열로 재입학하게 됐습니다." 전문대 적응은 만만치 않았다. 공구를 들고 자동차 엔진을 분해하고 조립하는 실습 때는 많은 땀을 흘렸다. 학기가 짧다 보니 1학년 1학기 현재 1, 2학점짜리를 포함해 모두 13과목을 수강하고 있다고 혀를 내둘렀다. 박 씨는 "대기업 자동차 정비업체에 취업하거나 장래에는 창업을 할 계획"이라고 했다.
윤선아(33'여) 씨는 4년제인 한국해양대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다가 안정적인 전문직업을 찾아 대구보건대 물리치료과에 입학했다. 2년 전 대구보건대를 졸업한 그는 학과 수석 졸업에 2010년 물리치료사 국가고시에서 3천400여 명 응시생 중 300점 만점으로 전국 수석까지 차지했다. 현재는 대구보건대병원에서 물리치료사로 일하고 있다.
장문주(27) 씨는 지역 전문대 웹프로그래밍과를 졸업했지만 전공과는 달리 대구의 한 금형회사에 취업했다. 취업 후 회사의 인정을 받으려면 금형기술이 필수라는 걸 깨달은 그는 국비로 운영되는 폴리텍대학 1년제 기능사 과정(금형디자인과)에 재입학했다. 1년 후 그는 대구 신우탑텍이라는 자동차부품제조회사에 취직, 연구개발부에서 근무하고 있다. 장 씨는 "기술이 절실했던 만큼 남들보다 더 열심히 일했다"며 "배우려는 의지만 있으면 얼마든지 기회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재완 대구진학진로지원단장(혜화여고)은 "점수에 맞춰, 주변의 시선 때문에 무작정 대학이나 진로를 선택하는 잘못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특히 부모들은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지 말고, 아이들의 시선에서 사회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며 "일반고 직업과정도 필요하다면 대상 학년을 고 1학년 2학기부터로 앞당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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