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호동락] 결혼기념일 캠핑

입력 2013-05-09 13:55:49

별 총총이는 밤, 와인 잔 기울이며 연애시절 떠올려

남자라면 누구나 일 년에 한 번은 '이번 결혼기념일은 어떻게 보낼까?'라는 고민을 해보았을 것이다. 나 역시 이번 결혼기념일이 우리 부부에게는 처음 맞이하는 기념일이라 특별한 이벤트를 해주고 싶었다. 한참을 골똘히 생각하다가 문득 '캠핑'이 떠올랐다.

그때부터 머릿속에는 테이블 세팅부터 음악, 요리 등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떤 고급 레스토랑에도 뒤지지 않는 분위기를 자연에서 연출하고 싶었다. 메뉴는 해물스파게티와 계란 스크램블에 연어 허브 구이를 준비하고, 와인은 평소 아내가 좋아했던 화이트 와인을 준비하기로 했다. 예쁜 그릇과 와인잔을 챙기고 테이블보도 특별히 갖고 가기로 한다. 분위기 있는 음악을 특별히 선별해서 준비하고, 조명도 분위기를 한층 올려줄 등유 랜턴으로 준비하기로 한다.

자, 이제 캠핑장만 정하면 된다. 요즘 캠핑 붐이 일면서 캠핑장은 주말마다 만원이다. 조용한 분위기의 캠핑장을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그러던 중 동호회 카페에서 예전에 본 적 있는 황매산오토캠핑장이 생각났다. 황매산오토캠핑장은 해발 850m에 위치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하늘 아래 첫 캠핑장이다. 봄에는 철쭉꽃으로 물들고 주변에는 '태극기 휘날리며' '각시탈' '서울1945' 등을 촬영한 드라마 촬영지인 합천영상테마파크와 해인사, 합천호 등이 있다. 우리 부부만의 소중한 기념일을 보내기에는 적격인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모든 준비를 끝내고 기념일을 기다렸다.

드디어 출발일이 되었다. 아내와 난 설렘을 안고 캠핑장을 향해 순조로이 출발했다. 부푼 기대감을 안고 캠핑장에 도착했지만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관리자 말로는 지금은 임시 개장 시기라서 지정석이 아니라 관리사무소에서 정해준 곳에서 캠핑을 해야 된다고 했다. 우리가 배정받은 자리 양쪽에는 친구끼리 오신 분들과 3대가 같이 온 가족 분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아내의 표정이 조금씩 굳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관리사무소에 가서 나의 사정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아직 개장하지 않은 조용한 나무데크를 소개해줬다.

그러나 더 큰 문제가 발생했다. 잘 챙긴다고 챙긴 테이블을 베란다에 두고 온 것이다. 아내는 트렁크를 뒤지더니 살짝 미소를 띤 채로 "자기, 빨리 꺼내. 장난치지 말고…" 라고 했다. 내가 집에 두고 온 것 같다고 진지한 말투로 대답하자 아내는 말이 없었다. 순간 나는 '정글의 법칙'에 나오는 개그맨 김병만처럼 어떻게든 테이블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캠핑장의 샤워장 공사현장이 눈에 띄었다.

현장 옆 폐기물 자재 버려둔 곳에서 20㎝ 두께의 스티로폼 조각 두 개를 발견한 후 속으로 '신이 나를 버리지 않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재빨리 스트링(텐트를 고정시키는 끈)을 이용해 간이 테이블을 만든 후 아내 얼굴을 보니 아내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환한 미소를 띤 채 웃고 있었다.

나는 생애 첫 결혼기념일을 기념하기 위해 정성껏 준비한 음식과 잔잔한 음악, 그리고 따뜻한 색의 조명을 세팅하고 한껏 분위기를 내기 위해 몰래 준비한 화이트와인과 플라스틱 와인 잔을 꺼냈다. 우리는 와인 잔을 기울이며 밤하늘 별을 보며 풋풋했던 연애 시절을 회상하며 밤을 즐겼다.

다음날 아침, 아내는 잠을 설친 것처럼 보였다. 연유를 물어보니 간밤에 불던 바람에 텐트가 흔들려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고 했다. 사실 나는 잠귀가 어두워서 바람이 불건 텐트가 흔들리건 세상 모르고 잤다.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무튼 이번 캠핑에서 작은 해프닝들이 있기는 했지만 그날 밤의 추억은 우리 부부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을 것 같다. 10년, 20년 후에도 우리의 첫 결혼기념일을 떠올리면 황매산에서의 캠핑이 떠오를 것이다.

허도준(네이버 카페 '대출대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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