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 그리던 가족, 늦기 전에 만나고파"…40대 임미숙 씨 애타는 사모곡

입력 2013-05-07 15:17:07

여덟 살부터 '식모살이', 남편도 암으로 세상 떠나…뇌종양·대장암 홀

임미숙 씨는 뇌종양으로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해 오른쪽 눈의 시력을 잃어 버렸다. 신동우기자
임미숙 씨는 뇌종양으로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해 오른쪽 눈의 시력을 잃어 버렸다. 신동우기자

'여덟 살에 부잣집에 팔려와 20여 년을 힘겹게 살았습니다. 부모 복 없는 여자는 남편 복도 없다고 했던가요. 암으로 남편이 죽고, 저마저 대장암에다 뇌종양으로 한쪽 눈을 잃은 지금, 마지막으로 어릴 적 기억으로만 남아 있는 어머니를 꼭 한번 불러 보고 싶네요."

임미숙(포항시 남구 동해면) 씨는 정확한 이름도, 고향도, 생일도 모른다. 기억하기로는 자신의 어릴 적 이름이 '영희'였다고 한다. 1972년생(만 41세)이란 것도 주민등록증 신고가 그렇게 된 까닭에 그저 짐작만 할 뿐이다. 8세 때 가족과 떨어져 대구의 한 부잣집에서 20년간 소위 '식모' 생활을 한 그녀에게 지금까지의 삶은 몸과 마음에 병이 들어 살아가기도 힘든 날들이었다.

"부잣집으로 갈 때 차를 탄 기억이 없으니 대구와 가까운 곳에 살았나 봐요. 드문드문 인가가 있는 시골집에서 누에를 치며 살던 기억이 희미하게 남아 있어요. 언젠가 어머니가 뽕잎을 따러 가셨을 때 슬레이트 지붕으로 빗물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놀던 기억이 아련합니다."

그녀는 여느 때처럼 어머니가 밭일을 나가고 혼자 집을 지키고 있다가 '어머니가 너를 데리고 오라셨다'는 한 아주머니의 말에 이끌려 모진 세상으로 떠밀려졌다. 3급 세무공무원의 집으로 추정되는 곳에 맡겨진 임 씨는 주인집 아이들을 돌보는 등 가정부 생활을 하며 저녁이면 쥐들이 마구 뛰어다니는 골방에서 잠이 들어야 했다. 지금의 성과 이름, 생일도 그때 주인집에서 주민등록 신고를 해줘 얻었다.

"처음 쥐똥이 가득한 방에서 잠을 자니, 쥐들이 몸 위로 막 뛰어다니곤 했어요. 그런 방에서 살며 주인집 아이들을 돌보는 일부터 시작해 나이가 어느 정도 들자 빨래며 청소 등도 다 했어요. 그렇게 일해도 급료는커녕 학교도 안 보내주고 27살이 되면 시집을 보내주겠다는 말만 했었죠."

23살 때 그녀는 한쪽 눈이 너무 아프고 눈꺼풀이 점점 감겨 병원을 찾았다. 뇌종양에 의한 증상으로 판명받고 당장 수술을 하지 않으면 영원히 한쪽 눈의 시력을 잃게 된다는 경고까지 받았다. 그러나 너무나 큰 비용이 드는 까닭에 주인집은 수술을 거부했다. 그렇게 그녀는 한쪽 눈이 감기며 5급 시각장애인이 됐다. 그녀는 도저히 이렇게 살 수 없다는 생각에 29세 때 포항의 청소대행업체에서 일하던 남편을 만나 1999년 대구를 떠났다. 하지만 행복한 시절도 잠시, 너무나 힘든 생활을 보낸 탓이었는지 아이도 없이 2008년 남편은 패혈증으로 사망했고 그녀 또한 2012년 대장암 판정을 받았다. 지금은 1종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 지원금으로 근근이 생활하고 있지만 힘든 시절 수술비를 마련해주는 등 도움을 준 성당 사람들의 고마움을 생각해 천주교 봉사단체에 가입해 봉사활동으로 남은 생을 이어가고 있다.

"이제 와서 누구를 원망하거나 하소연할 생각은 없어요. 생각해보면 어릴 적 우리집은 항상 쇠죽 끓는 향긋한 냄새가 나고 어머니, 오빠, 언니와 참 행복했던 것 같아요. 내가 왜 그 행복 속에서 강제로 끌려나와야 했는지 이유가 알고 싶을 뿐이에요. 그리고 몸이 아프다 보니 더 늦기 전에 꼭 한번 사랑하는 가족들의 얼굴이 보고 싶답니다."

포항'신동우기자 sdw@msnet.co.kr

이름: 임미숙(어릴적 이름 '영희', 성은 모름)

생년월일: 1972년 7월 7일(추정)

출생지: 대구 인근지역

특징: 어릴 적 소죽을 끓이던 가마솥 위에 넘어지면서 코가 깨져 수술을 받은 흉터가 남아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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