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참되거라 바르거라 가르쳐 주신 스승은 마음의 어버이시다…."
5월이 되면 자주 듣게 되는 노래이다. 수십 년을 듣고 불렀으니, 전자동으로 노래가 나온다. 그런데, 어버이날 노래를 빼고는 첫 소절을 떠올리려니 애가 쓰인다. 나에겐 아직 어버이날 노래를 불러 드릴 어버이가 계시지만, 내 자식들은 어린이날과 스승의 날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만큼 자랐기 때문이다. 사람이란 이만큼 철저히 자신과 관계된 것에만 집중하게 되는 존재이다. 그러니, 타인의 고통과 삶에 공감하기란 어려운 법이다. 어이쿠, 이야기가 샌다. 다시 '5월은 가정의 달' 아니, 많은 유자녀 여성들에겐 '챙겨야 할 선물이 많은 달'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오자.
5월에는 1일 노동절(근로자의 날)로 시작해, 5일 어린이날, 8일 어버이날, 15일 스승의 날, 20일(5월 셋째 월요일) 성년의 날, 21일 부부의 날이 있다. 이 중에 유자녀 여성들이 특히 신경을 많이 쓰는 날이 아마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일 것이다. 좋은 취지로 시작해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기념일이라는 것에 대한 믿음은 굳건하지만, 선물 마련의 부담감이 가득한 기념일들이 줄줄이 붙어 있으니 싱그럽다는 5월이 싱그럽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이런 기념일들은 언제 어떻게 생겼을까? 어린이날은 3'1운동 이후 소파(小波) 방정환(方定煥)선생님을 중심으로 한 색동회 덕에 그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것, 그리고 어버이날은 미국에서 시작한 어머니날에 그 유래가 있다는 정도는 알고 있지만 말이다. 유관 정부 부처라 생각되는 여성가족부의 사이트로 들어갔다. 이에 대한 정확한 자료를 찾기 어려워, 위키피디아 및 검색 사이트에서 두산백과, 국립민속박물관 한국세시풍속사전이 제공한 자료를 공부하였다. 각각의 취지와 역사가 깊고, 세계 여러 나라의 현황이 다양하다. 그리고 생각보다 흥미롭다.
장난감을 받고 환하게 웃는 어린이, 카네이션과 봉투를 받으신 부모님, 카네이션과 선물을 받으신 선생님. 이런 장면이 나오기까지 고민이 많았을 사람들. 이것이 최소 5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이 아름다운 기념일들의 모습이기만 하다면 그것은 슬픈 일이다. 내 아이만, 내 부모만, 내 아이의 스승만 챙기는(또는 챙겨야 하는) 부담스러운 날이라면 슬픈 일이다. 내 가정만 챙기기에도 바빠 죽겠는데 뭔 소리냐고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10분만 시간을 내어 기념일의 유래를 알아보자. 그리고 생각을 해 보자. 그러면 부담스러운 날이 아니라, 기념할 만한 날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알면 달리 보일 것이다.
예컨대, 교사의 날이라고 불리는 스승의 날은 1958년 5월 8일 청소년 적십자 단원들이 세계적십자의 날을 맞아 병중에 있거나 퇴직한 교사들을 위문하기 시작한 것이 그 출발이었다 한다. 매년 10월 5일은 세계 교사의 날(World Teachers' Day)로 기념되고 있고, 우리나라는 1965년에 세종대왕 탄신일인 5월 15일을 스승의 날로 정하였다 한다. 그러니까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선생님께 감사를 표하는 날이지, 학부모들이 아이들보다 더 나서서 무엇을 하는 날은 아니라는 것이다. 스승의 날을 아이들보다 학부모들이 더 나서서 무엇을 하다 보니 스승의 날을 2월 말로 옮기자는 이야기도 나오고, 이날 휴교를 하는 일도 생기는 게 아닐까.
이러한 기념일들에 비해 역사가 짧은 부부의 날은 '전통적인 가부장제 문화를 벗어나서 현대 사회에 맞는 부부 관계를 정립하기 위해' 제정되었고, 2004년부터 법정 기념일이 되었다. 부부의 날을 5월 21일로 정한 이유는 "5월에 둘(2)이 하나(1)가 된다"는 뜻에서라고 한다. 참 좋은 뜻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곧이어 다시 생각하니, 한편으론 무섭다. 둘이 어떻게 하나가 된단 말인가. 애당초 하나가 될 수 없는 둘인데 말이다. 어쨌거나 기념일은 그 뜻을 잘 기리면서 보내자.
김성아/사단법인 더나은세상을위한 공감 이사 drsakim@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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