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동성애와 경제 이론

입력 2013-05-07 11:04:35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유명한 동성애자였다. 이튼 칼리지 재학 시절부터 또래 남학생들과의 사회적 및 육체적 '친밀성'에 깊이 빠져 있었다.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한 케임브리지대학은 이러한 성적 취향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당시 케임브리지에는 1812년에 설립된 '사도회'라는 비밀 엘리트 모임이 있었는데 케인스는 그 회원이었다. 사도회는 철학 미학 등 지적인 교류뿐만 아니라 회원 간 '사랑'의 교류도 활발했다.

사도회가 동성애에 빠졌던 것은 젊은 남자에 대한 사랑은 여자에 대한 사랑보다 윤리적으로 더 우월하고 더 풍성하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들은 이를 '고결한 남색'(higher sodomy)이라고 불렀다,('투자전쟁' 바턴 빅스)

케인스는 또 사도회 멤버에다 케임브리지 출신이 아닌 문인, 예술가 등도 참여하고 있었던 블룸스버리 그룹이란 지식인 집단에서도 많은 애인을 사귀었다. 그중 젊은 화가 던컨 그랜트와의 관계는 주변에 공공연히 자랑할 정도였다. 그러나 케인스는 1918년 런던을 방문한 러시아 댜길레프 발레단의 무용수 리디아 로포코바를 만나면서 '고결하지 않은' 이성애로 돌아선다. 이에 대한 불룸스버리 그룹의 반응은 실망과 분개였다.

이런 반응은 어이없어 보인다. 동성애자라고 그를 비난할 것도, 불룸스버리 그룹처럼 동성애를 그만뒀다고 분개할 이유도 없다. 그것은 개인의 성적 취향일 뿐이기 때문이다. 더 어이없는 것은 동성애가 그의 경제 이론을 공격하는 무기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니얼 퍼거슨 하버드대 교수가 케인스는 동성애자라 자식이 없어 미래 세대에 무관심했다고 비판했다가 서둘러 사과했다. 퍼거슨 교수는 케인스와 달리 즉각적인 재정 긴축이 경기 침체의 해결책이라고 주장하는 긴축주의자다.

퍼거슨류의 비판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조지프 슘페터는 1946년 케인스에 대한 추모의 글에서 똑같은 말을 했다. "그는 후손이 없기 때문에 그의 인생철학은 근본적으로 단기 철학이었다." 영국의 보수 신문 '더 타임스'의 대표 논객 윌리엄 리스-모그는 1983년 한 발 더 나아가 케인스 이론이 도덕적 파탄의 결과라고 했다. 케인스는 도덕적 원칙을 거부함으로써 '화폐적 인플레이션을 자동적으로 조절해주는' 금본위제를 거부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세계적인 지성이란 사람들의 비판도 때로는 이렇게 유치할 때가 있는가 보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