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이들의 축 처진 어깨를 보면 서글퍼진다. 피곤하고 지친 모습이다. 깔깔거리며 소란을 피우는 아이들이 좀체 눈에 띄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쫓기는 것처럼 늘 바쁘다.
저녁 7시에 집에 돌아간다는 초등학교 1학년 아이를 만나고는 적잖이 놀랐다. 조그마한 어깨에 매달린 책가방이 아이를 땅으로 내려 앉혔다. "어깨가 아파요"라는 말에 무심히 지나칠 수 없어서 책가방을 들어주었다. 묵직하니 짐 같았다. 비단 그 아이만의 얘기는 아닐 것이다. 내 아이의 일이고 세상 모든 아이의 말일 것이다. 짐에 짓눌려 있다는 말 같아서 눈시울이 뜨거웠었다. '너희가 아픈 건 어른들 탓이야.' 이 학원, 저 학원을 돌다가 해가 뉘엿해질 무렵에야 귀가하는 아이가 남의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이들은 '공부'라는 지옥행을 타고 고속으로 달리고 있다. 학교 수업을 마치기 무섭게 대기하고 있는 학원 차량으로 간다. 집으로 돌아오면 쉴 수 있는가. 반갑지 않은 '학습지'가 기다리고 있다. 한참 놀아야 할 시기에 공부에 찌들어 산다. 정작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은 하지도 못하고 뒷전으로 물러나 있다. 아이의 꿈은 자라지 못하고 난쟁이로 있다. 엄마의 꿈만 키다리가 된다.
첫째 아이를 키우면서 "엄마가 진짜 내 엄마 맞아, 너무 멀게만 느껴져. 계모 같아"라는 말을 듣고 많이 놀랐었다. '엄마'라는 자격에 문제가 있다는 말이었다. 아이의 고통을 어른들이 몰라줘서 속상하고 서운한 마음에 한 말이었겠지만,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던 마음은 얼마나 답답했을까. 엄마가 자식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것 같지만, 타인보다 모르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보면 다른 아이들보다 내 자식이 한없이 작아 보인다. 욕심이 소중한 자식에게 아픔을 준다.
부모 역할공부를 하며 아이의 눈에서 바라보고자 애썼던 기억이 난다. 아이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은 엄마라기보다는 교사나 지도자가 아니었을까. 부모 노릇 하기도 힘들지만 아이들이 살아가기도 어려운 세상이다.
아이가 진정으로 바라는 부모는 어떤 모습일까. 아이의 마음을 알아주고 권리를 존중해주며 배려할 줄 아는 숙성된 포도주 같은 사람이 아닐까. 맛있는 고기반찬으로 배를 불리기보다는 관심과 격려, 칭찬이 아이들의 영혼을 살찌우는 보약일 것 같다.
아이들이 부모한테서 가장 듣기 싫은 말은 "공부 좀 해라"였다. 아이들이 절실히 원하는 건 "놀고 싶다"일 것이다. 놀고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마음껏 놀려 줄 수 없어서 부모의 마음도 아프다. 따뜻한 마음이 담긴 말 한마디, "사'랑'해"가 아이들의 지친 어깨를 보듬는 좋은 선물이 되지 않을까.
김근혜<수필가·대구행복의 전화 소장 ksn15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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