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 은퇴의 재발견] <2부>행복한 은퇴자들 ⑤신바람 택시기사 최돌문

입력 2013-05-04 08:00:00

구속받지 않는 직업, 양복 입은 드라이버…나는 자유롭다

개인택시 운전이 은퇴자에겐 최고의 직업이라는 최돌문 씨는 눈치 볼 일 없어 편할 뿐 아니라 자유로운 것이 가장 좋은 점이라고 했다.
개인택시 운전이 은퇴자에겐 최고의 직업이라는 최돌문 씨는 눈치 볼 일 없어 편할 뿐 아니라 자유로운 것이 가장 좋은 점이라고 했다.
최돌문 씨는 경주에서 아마추어 최고령 투수다.(사진 좌) 취미로 시작한 사진 촬영으로 경주시청 근무 내내 공보실에서 사진을 찍게 됐다.
최돌문 씨는 경주에서 아마추어 최고령 투수다.(사진 좌) 취미로 시작한 사진 촬영으로 경주시청 근무 내내 공보실에서 사진을 찍게 됐다.

반짝반짝 빛나는 택시에서 내린 최돌문(62'경주시 황성동 삼보아파트) 씨. 깔끔한 정장 차림에 동작은 날렵했다. 앉자마자 그는 개인택시가 신이 내린 직장이라고 자랑했다. 은퇴 후 최고의 직업이라고 했다. 구속받을 일도 눈치 볼 일도 없이, 놀고 싶으면 하루 쉬면 되고 멀리 떠나고 싶으면 덮으면 되는 기막힌 것이라고 했다.

체구는 작았다. 하지만 그는 경주에서 알아주는 최고령 야구투수다. 그것도 사회인 야구팀의 승률 좋은 투수다. 경주시청에서 근무할 때 그는 에이스 투수였다. 백넘버 18번. 최 씨가 오랫동안 몸담았던 경주시청 직장야구팀에는 이 번호가 결번이다. 그를 기리기 위해서다.

그는 지난 2000년 신라문화제 행사 때 큰 사고를 당했다. 모두들 어렵다고 했지만 그는 깨어났다. 그 후 인생관이 달라졌다. "뭐 사는 게 별거 있습니까. 오늘을 즐기는 것이 그냥 최고지요. 고민? 그거 한다고 해결되면 하루 종일 고민만 하지요."

'모든 게 감사하고 행복할 뿐'이라는 신바람 택시기사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어떻게 운전대를 잡게 됐나.

"2008년 12월 경주시청에서 퇴직하고 1년 정도 집에 있었다. 처음 몇 달은 좋았으나 그다음부터는 지루하고 재미없었다. 돈도 벌 수 있고 자유로운 직업을 찾던 중 개인택시를 알게 됐다. 내가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되는 배짱 편한 것이 개인택시였다. 2010년 7천만원을 주고 개인택시 면허를 샀다. 해보니 이보다 좋은 직장은 없다."

-수입이 궁금하다.

"오전 7시 30분에 일하러 나간다. 1시간 반쯤 운전하다가 9시에 집에 온다. 옷을 갈아입고 집 근처 황성공원으로 가서 운동한다. 야구를 하기 위해서는 몸을 계속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1시간 이상 운동하고 집에 와서 점심을 먹는다. 오후 1시쯤 차를 몰고 나가 4시까지 일한다. 오후에는 6시부터 8시까지만 운전한다. 한 달에 70만~100만원 정도 번다. 손자 용돈 주고 경조사 비용과 내 용돈으로 충분하다."

-너무 놀면서 하는 거 아닌가.

"한 달에 70만원 수입이라고 생각하면 잘못된 계산법이다. 어차피 차는 있어야 하니까 자가용 굴리는 비용도 수입에 포함돼야 한다. 무엇보다 일이 있기 때문에 돈 쓸 시간이 없다. 그것도 버는 일이다. 이렇게 계산하면 200만원 정도의 벌이는 된다고 봐야 한다. 하루 종일 얽매이는 생활은 싫다. 20년 정도 그런 생활을 했으면 된 거 아닌가. 올해 동유럽을 다녀왔다. 어제는 부인사에서 열린 선덕여왕숭모제도 갔었다. 하고 싶은 거 하며 살고 싶다. 인생 그렇게 긴 것 아니다."

-늘 정장 차림으로 운전하나.

"선진국에 가보면 운전기사들은 정장 차림이다. 차림이 깨끗하면 손님들도 좋아한다. 특히 여성분들은 안심이 된다고 말한다. 등산복을 입거나 아무렇게 입고 운전하는 것은 손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려운 점은 없나.

"술 취한 젊은이들에게 한 소리 들으면 기분 나쁘다. 그래서 오후 8시 이후엔 운전하지 않는다. 경주에 손님이 없다. 경기가 좋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이삭 줍기 정도다."

-경주의 최고령 투수라고 들었다.

"체구는 작지만 이래 봬도 경주에서 직장인 야구 하면 알아주는 사람이다. 1988년 경주군청 야구단을 창단했고 준우승도 여러 번 했다. 1995년도 시'군 통합이 되면서 경주시청 야구팀하고 합쳐졌다. 2000년 초에 제주도에서 열린 공무원야구대회에서 우승도 하고 이듬해 준우승을 했다. 한때 날렸다. 지금도 괜찮지만…. 하하하."(식당에서도 그는 이 사람 저 사람 인사 나누느라 바빴다.)

-지금도 야구를 하나.

"퇴직하고 경주 사회인 야구팀인 드레곤스팀에 소속돼 투수로 활약하고 있다. 1주일에 한 번씩 경기를 한다. 선발투수가 되어 승리를 잡기도 한다. 물론 만루 홈런을 맞고 조기에 강판되기도 하지만. 그게 야구다. 어려울 때도 있고 한순간에 뒤집을 수도 있는 것이 야구의 묘미다. 인생과 닮았다. 포항 시니어야구팀의 영입 제의가 있었지만 거리가 멀어 거절했다."

-체구가 왜소한데.

"내가 야구 한다고 하면 물을 떠다 주거나 보조 정도로 생각한다. 하지만 던지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놀란다. 물론 체격이 좋으면 유리하겠지만 꼭 체격만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상대방의 심리를 읽어야 하는 것이 야구다. 모두들 타석에 들어서면 투수의 작은 체격을 보고 만만해하며 덤빈다. 그것이 이기는 비결이다."(그는 키 161㎝에 체중 52㎏이라고 했다)

-사진도 찍는다는데.

"사진은 취미로 시작한 것이 일이 됐다. 시청 공보실에서 사진을 20년 정도 찍었다. 지금도 카메라는 늘 차 안에 넣고 다닌다. 남산사우회에서 7년 동안 회장직을 맡았고 한국사진작가협회 경주지부 섭외간사를 맡고 있다. 요즘은 풍경을 주로 찍는다. 나이 드니까 편안한 풍경이 좋다. 두 달에 한 번 정도 출사한다."

-굉장히 긍정적이다.

"2000년 신라문화제 행사 때 줄다리기 사진을 찍다 높은 곳에서 떨어졌다. 모두들 어렵다고 했지만 이렇게 건강하게 살고 있다. 그 이후로 재미있는 삶이 나의 최고 목표다. 제대로 사는 법을 배운 셈이다. 하루하루 열심히 즐긴다. 고민하지 않는다. 그것이 신바람 나게 사는 비결인 것 같다."

-언제까지 할 수 있을 것 같은가? 야구도 운전도.

"모든 것을 건강에 맞추며 산다. 건강을 잃으면 아무 의미 없기 때문이다. 허락만 되면 전국에서 최고령 아마추어 투수가 되고 싶다. 그리고 최고령 운전사도. 욕심이 많나?"

-택시손님이 없다고 들었다.

"관광객들의 패턴이 바뀌었다. 차를 가지고 오고 또 단체로 버스를 맞추어 온다. 그래서 택시 손님이 점점 줄고 있다. 경주 경기도 좋지 않다. 경주 발전을 위해서는 문화에 대한 정부의 인식 전환이 시급하다. 세계적으로 유일한 천년고도가 숨넘어가게 생겼다. 정말 아쉽다. 한 나라가 천년 세월을 버티는 것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인데…."

-택시 기사를 해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자격만 갖추면 누구나 할 수 있다. 최근에 은행지점장 하시던 분도 개인택시 하는 것을 봤다. 눈치 보지 않고 오랫동안 할 수 있는 최고의 직업이다. 돈에 욕심 부리지 않는다면 권한다."

김순재 객원기자 sjkimforce@naver.com

사진: 김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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