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려지는 것이 있다면 봄비였던 때가 있었다. 오늘도 그날처럼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언제나처럼 어김없이 봄은 돌아왔다.
37년 전 고등학교 3학년 때 서클에서 알게 된 남자 친구와 대학생이 되면 봄비 오는 날, 영남대 대명동 캠퍼스 후문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했었다. 하지만 나는 대학생이 되지 못했다. 그런 나 자신이 너무 창피하고 부끄러워서 결국 나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얼마 후 그 친구가 해병대에 입대해서 군 복무 중이라는 소식도 들었지만 우리는 그렇게 빗방울처럼 흩어져 버렸다. 그 이후로 몇 해 동안, 비만 오면 모든 것들이 비에 젖듯 그 생각만 가득했었다.
한동안 잊은 듯하던 아련한 기억들이 요즘 들어 새록새록 들춰지는 건, 나이가 들어가는 탓일까? 이것도 한 조각 애잔한 추억이겠지 하며 혼자 피식 웃고 만다.
며칠 전 텔레비전에서 '단기 기억상실증'을 앓게 돼 아주 많은 것을 잃어버린 가수의 사연을 봤다. '봄비~ 나를 울려주는 봄비~'란 노래로 예전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가수였다. 오늘따라 그 노랫말이 유난히 가슴에 와 닿는다. 모든 사람들이 소중히 접어뒀던 화선지를 펼치듯 만물이 소생하는 희망에 찬 봄을 이 비와 함께 맞았으면 하는 소망을 빌어본다.
김정현(대구 수성구 범어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