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몰랐던 어머니, 가슴 아파 한글 재능봉사"

입력 2013-05-01 10:32:30

10년째 한글 가르치는 김명균 씨

"배우지 못한 어르신들에게 한글을 가르쳐 드리고 싶어요. 어르신들이 낱말 하나하나를 익혀 나갈 때 정말 행복합니다."

지난달 29일 오후 대구달서노인복지관 2층 조그마한 강의실. 할머니 20여 명이 한글 선생님의 지도로 전래동화 '할미꽃 이야기'를 배우고 있다. 오늘은 낱말을 읽고 쓰기 공부를 하는 시간. 선생님이 보름달, 부지런하다, 맏며느릿감 등 낱말을 읽었다. 할머니들은 연필을 꾹 눌러 삐뚤삐뚤하지만 정성껏 낱말을 옮겨 적었다. 선생님은 교재 몇 페이지 몇째 줄을 보세요라며 힌트까지 주었다. 선생님은 '받아쓰기를 하다 틀려도 괜찮습니다. 아는 것이 중요해요'라는 위로의 말도 했다. 한글을 배우는 어르신과 선생님의 수업 분위기는 진지하면서도 화기애애했다.

40년 교직생활을 마치고 소외된 이웃들에게 10년 넘게 한글을 가르쳐주는 김명균(77) 할아버지. 그는 매주 월, 화요일 두 차례 달서노인복지관을 방문해 초급반 할머니 20여 명에게 한글 배움의 길을 열어주고 있다. 할머니들도 "우리 선생님은 꼼꼼하면서도 잘 가르쳐 주신다"며 선생님을 치켜세웠다.

"사실 저희 어머니도 한글을 배우지 못해 마음이 아팠어요. 그래서 이웃 어르신들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주기 위해 한글 재능봉사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그는 달서노인복지관 외에 월성종합복지관에도 초급반, 중급반 한글교실을 열고 있다. 월성복지관에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매일 오전에 2시간씩이다. 수강생은 30여 명. 월성복지관 주변에는 영세하게 사는 이웃들이 많다. 그래서 수강생들 대부분은 파지를 줍는 어르신에서부터 품팔이하는 어르신까지 하루하루를 힘겹게 사는 분들이다. 그는 처음에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 한글교실을 열려고 했지만 어려운 생계 활동으로 시간을 못 맞추는 어르신들을 배려해 아예 매일 한글교실을 열고 있다. 어려운 시대를 산 어르신들은 배움의 열정이 강해 한글교실에 거의 빠지지 않는다. 공부를 할 때 우는 어르신도 많아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릴 때가 많다.

"어르신 한글교육을 한답시고 퇴직금도 많이 쏟아부었어요. 한글교재를 직접 만들기 위해 제본 기계도 샀습니다."

그는 한글에 대한 기초가 없는 어르신들을 위해 교재도 손수 만든다. 지금껏 만든 교재만도 쓰기'읽기 책 수십 가지. 교재는 진도에 따라 3개월에 한 권씩 만들어 복사본 50권을 준비해야 한다. 교재는 어르신이 좋아하는 고전이 대부분인데 책장마다 삽화도 넣었다. 처음에는 교재를 제본사에 맡겨 만들었지만 비용이 만만찮아 직접 집에서 만들고 있다. 교재는 어르신들이 핸드백에 휴대하기 편하게 A4 절반 크기로 작다. 그는 어르신에게 맞는 고전책을 구하기 어려워 고물상과 헌책방을 수없이 뒤지기도 했다.

"저한테 배운 어르신들이 초등 검정고시를 통과했을 때 가장 보람 있어요. 검정고시 합격생 수도 제법 있거든요."

그는 건강만 허락하면 어르신 한글교실을 계속 열겠다는 생각이다. 행여 강단에 서지 못하면 어르신 한글교재를 만들어 복지관에 기증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구미 선산이 고향인 그는 1999년 진천초등학교서 정년퇴직 후 숲 해설가, 어르신 컴퓨터 지도 등 활동을 해오기도 했다.

김동석기자 dotory125@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