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의 고통은 모든 예술 장르가 마찬가지겠지만 시인에게서 상상을 뛰어넘는 시 한 구를 얻기 위한 노력과 욕망은 대단하다.
'삼국사기'를 지은 김부식과 정지상은 고려 중기 쌍벽을 이루는 당대의 문장이었다. 어느 날 둘이 폐사(廢寺)에 놀러 갔다가 지상이 '빈 대들보에서 꾀꼬리의 오물이 떨어지네'라는 시구를 지으니 김부식이 이것에 하필(下筆)하지 못하고 지상의 시구에 감탄하며 그 구를 자기에게 달라고 졸랐다. 지상이 이를 거절하자 김부식은 정지상을 묘청의 난 때 묘청과 내통했다고 누명을 씌워 죽였다. 그 후 김부식이 어느 절의 뒷간에서 변을 보는데 지상 귀신이 나타나 김부식의 음낭을 세게 잡아당겨 그만 화장실에 빠져 죽었다고 이규보의 '백운소설'은 전하고 있다.
죽은 황진이를 칭송한 임제는 조선 중기 천하의 문장가이자 호남이었다. 춘삼월 어느 날 술에 취해 주모와 눈이 맞아 하룻밤을 동침하였다가 주모 남편에게 들켜 죽게 되었다. 그는 즉석에서 시를 읊었는데 '어젯밤 장안에서 술에 취해 여기오니 복숭아꽃 한 송이가 아름답게 피었네. 그대 어찌 이 꽃을 번화한 땅에 심었나. 심은 자가 그른가, 꺾은 자가 그른가'라고 읊은 후 임제는 주모의 남편에게 목을 내밀자 남편이 시에 감탄하여 죄를 용서하며 융숭한 대접을 하였다.
함춘원은 창경궁 밖에 있는 동산이다. 성종은 자주 이곳에 거동하여 청유(淸遊)를 즐겼다. 성종이 친히 읊은 시를 정자 기둥에 써 붙였다. '삼월 봄버들, 푸른 비단을 잘라 만든 것 같고, 이월에 핀 꽃 붉은 비단을 말아 만든 듯하네'라는 시구이다. 그러나 성종이 사흘 뒤에 와 보니 누군가 대구(對句)를 써서 붙여 놓았는데 '만약 높은 양반이 이 경치를 다툴라치면 운치 있는 봄빛, 시골집에는 이르지 못하리'라고 적혀 있었다. 쓴 사람을 찾아보니 영월 향교의 낙강생으로 후원의 문지기를 하는 신귀원이라는 사람이었다. 성종은 그를 불러 집도 주고 벼슬도 주었다.
우리가 잘 아는 조선 초 남이장군은 자작시 때문에 간신배 유자광에 의하여 누명을 쓰고 죽었다. 선조들이 삶의 여유와 풍류로 쓴 시구가 때로는 죽음에 이르기도 하고, 때로는 출세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으니 기막힌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무튼 우리민족에게 시는 삶이 건조하고 힘이 들 때 풍류와 멋을 제공하는 수단이었다. '도화 잎 언제나 봄물 따라 흐르는데 선경(仙境)이 어디 있을꼬, 찾을 길이 없구나.'
최규목 시인 gm3419@daegu.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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