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적으로 기억력의 저하를 주요한 증상으로 하는 치매는 크게 퇴행성 뇌질환에 의한 치매(알츠하이머형 치매)와 뇌혈관질환에 의한 치매(혈관성 치매) 그리고 뇌막염, 뇌매독, 뇌종양, 갑상선 기능 저하증 등과 같은 질병에 의한 치매 등으로 나누는데, 이들 치매는 뇌의 손상으로 일어나는 일반적인 병리현상들이었다.
그런데, 요사이 문화'문명적 요인에 의한 치매 현상이 관심거리가 되고 있다. 소위 말하는 '디지털치매증후군', '디지털치매'라는 것이다. 스마트폰, 컴퓨터 등과 같은 디지털 정보, 자료 저장 장치가 인간 두뇌의 기억 기능을 대체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기억력 감퇴 현상이다.
이러한 현상은 질병이라고 단정하기보다는 사회문화적 환경 변화에 따라 인간 지능 능력이 감퇴되는 문화적인 현상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따라서 그 해결책도 개인의 선택적인 문화생활과 긍정적인 사회문화적 환경 변화를 유도해 나가는 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우리 개개인은 어떻게 해야 디지털치매증후군으로부터 안전해질 수 있는 것일까? 영국 경험론의 창시자인 베이컨의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과 단테의 저서 '신곡' 중 지옥 편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을 떠올려 본다.
지금도 베이컨이 활동하던 16, 17세기와 같이 아는 것은 힘이다. 그러나, 이제 이 앎의 총량적인 면과 보존적인 면에서만은 인간의 두뇌보다 더 방대하고 영속적인 디지털 저장 매체들이 대체하고 있다. 이러한 국면은 디지털 저장 기기의 긍정적 측면이다.
문제는 지옥문 위에서 구제받을 수 없는 영혼들의 숙명을 바라보며 고뇌하는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에게서 느낄 수 있는 지적 행위의 힘이다. 즉 축적된 디지털 저장 매체들의 지식을 기반으로 새로운 가치와 정신을 창조해 내는 힘을 이야기한다.
바로 이러한 방향으로 디지털 자료를 사용한다면 디지털치매증후군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 뿐 아니라 디지털 매체 또한 인간의 창조적 활동을 지원하는 문명의 이기(利器)로 오래도록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지난해 7월 공개된 'OECD 브로드밴드 통계' 보고서는 2011년 12월 기준으로, 우리나라가 초고속 무선 인터넷 보급률에서 100.6%로 34개 OECD 회원국 중 1위를 차지했다고 했다. OECD 회원국 평균 보급률인 54.3%의 2배에 달하는 수치다. 가히 디지털 천국이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아무리 디지털 매체가 발달하더라도 극단적인 집단 인지능력의 파괴나 상실은 오지 않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디지털 환경에 비례하는 사회적 인지 활동과 기능의 감소는 우려된다.
그 때문에 유아와 어린이, 그리고 청소년 교육 분야에 대한 각별한 관심과 대책이 가장 시급하고 절실하다. 인간의 뇌는 유아기와 아동기에 가장 많이 변화하며 발달하므로 이 시기의 디지털 기기 사용은 유아와 아동들의 뇌 발달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교육과학기술부는 2015년부터 전체 취학 아동들을 대상으로 태블릿 PC를 지급하고, 전자교과서로 수업할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이건 우리 자녀들의 뇌를 파괴하는 재앙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유년기와 아동기의 디지털 매체에 대한 흡수는 무조건적이므로 디지털치매의 지름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최소한, 유년기와 아동기에는 아날로그적인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생활 습관 또한 아날로그적이면 더 좋겠다.
그렇다고 디지털사회로의 변화를 부정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디지털 환경의 이로움은 취하되, 그 해악은 해소시켜 올바른 방향으로의 변화를 모색하는 것이 우리 과제라는 말이다.
바람 불어 좋은 날, 술 한잔하고 취중에 집에 돌아온 다음 날 아침, 아내가 딸아이와 아침 밥상머리에서 "너희 아빠는 그렇게 정신이 없어도 아파트 현관 비밀번호와 집 비밀번호를 한 번도 틀리지 않고, 또박또박 누르고 들어오니 대단하시지?"라며 나의 기억력을 칭찬(?)한다.
겨울밤 달빛 같던 찹쌀떡 장사의 소리 속에 잠들 무렵, 사각사각 연필을 깎아 필통 가득 준비해 주시던 어머니의 아날로그 사랑이 오십이 넘은 나의 취중 귀갓길을 지키고 있다.
변준석/대구한의대 의료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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