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실크로드 <제3부>] 3. 페르시아 제국의 영광 '페르세 폴리스

입력 2013-04-20 08:00:00

사자가 황소를 공격하는 동물투쟁도에서 고구려 고분 벽화에 새겨진 현무도의 원형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사자가 황소를 공격하는 동물투쟁도에서 고구려 고분 벽화에 새겨진 현무도의 원형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층계 벽면에 돋을새김으로 조각된 외국 사신들의 행렬은 당시 페르시아 및 오리엔트 생활문화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층계 벽면에 돋을새김으로 조각된 외국 사신들의 행렬은 당시 페르시아 및 오리엔트 생활문화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사신이 손에 들고 있는 항아리의 모습에서 신라황남대총에서 출토된 국보, 손잡이 달린 유리물병이 연상된다.
사신이 손에 들고 있는 항아리의 모습에서 신라황남대총에서 출토된 국보, 손잡이 달린 유리물병이 연상된다.
사람 얼굴에 날개 달린 짐승 몸뚱이를 한 인면수신상이 문 양쪽을 지키고 서 있는
사람 얼굴에 날개 달린 짐승 몸뚱이를 한 인면수신상이 문 양쪽을 지키고 서 있는 '만국의 문'은 페르세폴리스의 대표적 유적이다.

2천500년 전, 태양 아래 가장 부유한 제국이었다는 고대 페르시아의 수도 페르세폴리스는 아직도 비밀을 숨기고 있는 신비한 유적지이다. 오늘날 많은 역사가들은 페르세폴리스에 남아 있는 지금의 흔적만으로도 시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유적이라고 말한다. 1931년부터 시카고 대학의 발굴조사가 시작됐고 197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반열에 올랐다.

페르세폴리스는 '페르시아의 도시'라는 뜻으로 이란의 수도 테헤란 남쪽에 있는 시라즈 시에서 자동차로 약 한 시간 거리에 있다. 페르시아는 아케메네스 왕조의 다리우스 1세(기원전 521~486 재위)와 그의 아들 크세르크세스 1세 때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의 세 대륙에 걸쳐 영토를 확장하는 대제국을 구축했다. 페르시아의 전성기를 이끈 다리우스 1세는 활발한 건축 사업을 벌였으며 제국 내 각 지역의 최고 기술자를 총집결시키고 값비싼 수입 재료들을 사용해 페르세폴리스라는 위대한 걸작을 만들었다. 그 결과 약 12만8천 평방미터의 넓은 궁전에서는 다양한 문화의 혼합이 이루어졌다. 중요한 용도는 제국의 신년행사가 열리는 곳으로 사용됐다. 각 복속민족으로부터 공물을 받아들여 아키메네스조의 왕권이 신으로부터 주어졌음을 확인하는 성역이었다고 한다.

매표소를 지나자 입구에 좌우 양쪽으로 똑같은 계단이 나온다. 쌓아 올린 지 2천 년이 넘은 111개의 돌계단인데 큰 돌 한 덩어리를 쪼아 다섯 계단씩을 포개어 만들었다. 말을 타고도 올라갈 수 있도록 계단 높이는 낮다. 위를 보며 오르다 보면 먼저 하늘을 찌를 것 같이 높은 돌기둥이 줄지어 서 있고 바닥에는 넘어진 돌조각 파편이 지천으로 깔려 있다. 유적 위로 올라가 기념사진을 찍던 사람들이 관리인으로부터 지적당하자 동시에 확성기를 통해 주의하라는 멘트가 나온다. 감시카메라가 관광객들의 행동을 세심하게 보고 있다. 돌조각 하나라도 가방에 넣지 못하게 하려는 조치이다. 갑자기 사람 얼굴에 날개 달린 짐승 몸뚱이를 한 유익인면수신상(有翼人面獸身像)이 좌우에 나타난다. 크세르크세스 1세가 세운 것으로 모든 민족을 받아들인다는 의미인 '만국의 문'이다. 서쪽 기둥에는 한 쌍의 황소가, 동쪽 기둥에는 한 쌍의 인면수신상이 마치 경비병처럼 조각되어 있다. 이들을 이곳에서는 '라맛수'라 부르는데 황소 얼굴에 수염 난 사람의 얼굴 형체를 가진 '페르시아의 스핑크스'이다. 이 문을 통과하면 그 왼편에 하늘을 나는 쌍두 독수리상이 노려보고 있다. 호마라고 부르며 고대 페르시아 조로아스터교 시절부터 전설로 내려오는 새인데 왕의 머리나 어깨에 내려앉는다고 한다.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우리의 봉황과 비슷한 이미지로 이란 항공의 상징 마크로 사용되고 있다.

오른쪽으로 돌아서 나아가면 '아파다나 궁전'으로 부리는 알현실로 들어간다. 무엇보다 이곳의 인상적인 부분은 층계 벽면에 돋을새김으로 조각된 외국 사신들의 행렬 모습이다. 경건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들은 거의 비슷한 자세를 하고 있으나 옷차림이나 손에 든 선물 등으로 에티오피아, 아랍, 이집트, 스키타이 등지에서 온 사신임을 알아볼 수 있다. 조공을 바치는 각 민족의 신체적 특징, 의상, 생활 풍속 등이 세세히 나타나는 각각의 조각은 당시 페르시아 및 오리엔트 생활문화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벽면의 사진을 촬영하다가 문득 신라 고분에서 출토된 토용의 모습이 떠오른다. 경주 용강동 석실분에서 나온 문관상은 긴 턱수염과 얼굴 모습이 페르시아인의 풍모처럼 부드럽고 편안한 얼굴이었다.

석벽 곳곳에 커다랗게 새겨놓은 동물투쟁도 역시 눈길을 끈다. 고대로부터 동서양 미술엔 동물끼리 싸우는 모티프가 자주 등장한다. 우리 고구려 고분 벽에 새겨진 현무도는 뱀이 거북을 감고 싸우는 모습을 표현했다. 그 원형을 페르세폴리스에서 찾는 사학자도 있다고 한다. 황소와 사자의 투쟁을 두고 소는 겨울을, 사자는 여름을 대표하는 동물이어서 계절의 이동을 의미한다는 설이 유력하다. 페르세폴리스가 여름 왕도라는 것이 그 이론을 뒷받침한다. 사자는 왕을 상징해 절대적 통치를 암시한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그 절대 권력도 영원하지는 않았다. 330년 알렉산더 대왕은 페르세폴리스를 함락한 후 1만 마리의 당나귀와 5천 마리의 낙타로 창고에 있던 보물을 실어 갔다. 과거 아테네를 침입했던 페르시아 군대가 그리스 신전을 파괴한 것에 대한 복수로 불을 지르고 무참히 파괴했다는 것이다. 무릇 승자만의 역사가 안타까울 뿐,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역사적 보복에 아무런 죄 없는 문화만이 피해를 본다.

출구를 향해 발길을 돌려 다시 높은 계단 위에 섰다. 먼 들판을 바라보니 녹음 속에서 불어오는 봄바람이 상쾌하다. 다리우스 대왕도 자신이 지배하던 페르시아 제국의 대지를 이곳에서 바라보았을 것이다. 역사 그림책을 보는 것처럼 수많은 조각과 유적을 보고 있으면 시공을 초월해 그 시대 그곳에 몸을 두고 있는 기분이 된다.

글'사진: 박순국(전 매일신문 편집위원) sijen2@naver.com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