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속으로] 이사에 얽힌 추억-공단 조성으로 집단이주…고향집 그리워

입력 2013-04-18 14:29:37

어릴 때 고향집은 정말 아름다웠다. 참새들은 탱자나무 담장 사이로 아침인사를 하고, 황톳빛 토담은 운치를 더해 주었다. 산등성이 아래에 자리 잡아 정원도 따로 필요 없었다. 아무리 바라보아도 지루하고 싫증 나지 않았다.

하지만 한번 잘 살아보자는 사람들의 염원(念願)으로 고향은 공단으로 편입돼 집단 이사를 하게 됐다. 나를 키워주고 보듬어준 고향집을 떠난다는 일이 마음에 썩 내키지 않았다. 마음 한 곳에서 뭔가 비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새로움이라는 말 속에서….

이사를 한다고 해도 특별히 이삿짐을 쌀 것은 없었다. 재산이라고는 마음의 양식을 채워 준 책밖에 없었다. 어머니께서는 그래도 다른 재산보다 책이 많다는 것을 가슴 뿌듯하게 생각하셨다. 함께 정을 나누었던 동네 사람들도 이삿짐을 옮기기가 바빴다. 피란 행렬을 방불케 했지만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향하는 희망의 노래였다.

새로운 집에는 새로운 물건들이 어울릴 것 같았지만 우리는 오래 함께해온 물건들을 가져갔다. 고향집에서 살던 풋풋한 냄새를 맡을 수 있어서 좋았다. 오래된 물건들도 요리조리 모양새를 내어서 집안 분위기에 어울리게 멋을 부려보니 아늑한 보금자리로 변했다.

며칠 동안 분주하게 정리한 다음, 함께 살던 동네 사람들은 어떻게 단장을 해놓고 사는지 한 바퀴 돌아봤더니 가구며 전자제품이며 모두가 새것들이었다. 쓰던 물건들을 다 버리고 이사 온 모양이었다. 갑자기 풍족해진 삶에 절약하는 마음이 사라진 것 같아 아쉬웠다. 옛것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에서 검소한 마음이 싹튼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의 화려한 자개농을 바라보면서 어머니께서 시집오실 때 설레는 마음으로 가져오신 작은 문갑이 자꾸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부족했던 때를 생각하면서 늘 준비하는 모습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수많은 세월이 흘러도 고향집이 그리워지는 것은 오랫동안 마음을 나누고 키워준 소중한 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장명희(대구 달서구 이곡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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