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몰라요' 장관

입력 2013-04-18 11:08:58

당연한 말이지만 장관은 자기 업무에 정통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그 부처의 불행(복지부동의 철밥통엔 행복이겠지만)에 그치지 않고 국민을 힘들게 할 수 있다. 2차 대전의 영웅 윈스턴 처칠도 여기서 예외가 아니었다. 그는 뛰어난 국가 지도자였지만 재무장관으로는 '빵점'이었다. 1925년 금본위제 복귀 결정 때문이다.

1차 대전 후 영국은 금본위제로의 복귀 여부를 놓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영국의 금본위제는 1816년 채택 이래 잘 굴러왔으나 1차 대전으로 파탄을 맞았다. 전비 마련을 위해 재정지출을 크게 늘린 결과 통화가치가 폭락하고 사람들이 앞다퉈 돈을 금으로 바꿔간 것이다. 이렇게 무너진 금본위제를 재도입하려는 이유는 세계 무대에서 영국의 지위 유지 때문이었다.

그러나 금본위제는 이미 해가 지기 시작한 영국에 맞지 않는 옷이었다. 전쟁으로 약해진 영국 경제의 체력으로는 금본위제로 뒷받침되는 '강한 파운드'를 배겨낼 수 없었다. 금본위제를 '야만의 유산'이라고 비판했던 케인스는 이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는 파운드화 가치를 전쟁 전 수준으로 되돌리면 영국 경제는 과대평가된 통화와 높은 가격 때문에 견디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후 상황 전개는 케인스의 예언대로였다. 임금과 물가가 너무나 높아 석탄, 철강, 조선 등 수출산업이 큰 타격을 받았고 실업률은 20%까지 올라갔다. 영국은 1931년 금본위제를 조용히 포기했다.

이렇게 실패가 뻔히 보이는데도 처칠은 왜 금본위제 복귀를 결정했을까. 어이없게도 경제를 잘 몰랐기 때문이다. 그는 재무장관에 임명되자 스스로도 당황스러워할 만큼 준비가 안 돼 있었다. 처칠은 재무부 직원들과 회의를 할 때 그들이 하는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그는 훗날 이렇게 술회했다. "그들이 병사나 장군들이었다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했을 텐데 그들은 마치 페르시아어를 하는 것 같았다."('자본주의 새판 짜기' 대니 로드릭)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소관 업무에 대한 질문마다 '몰라요'라고 했던 윤진숙 해양수산부장관의 임명을 강행했다. 여당과 야당, 여론이 하나같이 반대하는 인사를 강행하는 박 대통령의 '깊은 뜻'은 참으로 가늠하기 어렵다. 그나저나 윤 장관이 대통령이나 직원들 앞에서도 '몰라요' 하는 일은 없어야 할 텐데. 국민을 걱정해야 할 장관을 국민이 걱정해야 할 판이니 나라 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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